아나스타시아

시원(始原)의 책

haanbs 2007. 12. 30. 10:47

시원(始原)의 책

 

- . <<함께 짓기>>. 나는 매일 그 책을 즐겨 읽어요. 그런데 아빠 글씨와는 달라요. 엄마가 이 책을 다른 글자로 읽는 법을 가르쳐주셨어요. 나는 가지각색의 즐거운 글자들이 좋아요. 이건 평생 읽을 수 있어요. 거기에는 모든 것에 대해 적혀있어요. 지구에는 곧 새 책이 나타날 거에요. 그러면, 나의 아빠, 아빠는 새 책을 그리게 될 거에요.

- 볼로자, 네가 말을 잘못 했구나. <<쓴다>>라고 해야 맞지.

- 하지만 아빠는 아홉 번째 책은 쓰지 않을 거에요. 어른과 아이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짓게 될 거에요. 그건 산 것이에요. 여러 개의 멋진 장()-동산으로 이루어져요. 사람들은 이 책을 아버지의 즐거운 글자로 지구에 쓸 거에요. 그건 영원할 거에요. 엄마가 이런 살아있는 영원한 글자로 읽고 또 낱말을 짓는 법을 가르쳐주셨어요.

- 잠깐만. 난 좀 생각을 해야겠구나.

 

난 아들의 말을 막았다. 그 아이는 이내 고분고분 입을 다물었다.

<< 놀랍군. 난 생각했다. 그러니까, 여기 타이가 어디에 아나스타시아한테는 사람들이 모르는 글자로 쓰인 고대의 책이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이 글자들을 알고 있고, 그것으로 낱말 짓기와 읽기를 가르친 것인가? 내가 <<함께 짓기>> 책을 짓도록 이 책에서 한 장을 읽어주었구나. 하느님이 지구와 사람을 창조한 장을 읽어주었어. 나는 그걸 받아 적은 것이고. 아들 말에 따르자면 논리가 그렇잖아. 하지만 난 아나스타시아가 손에 책을 잡은 걸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아들은 아나스타시아가 내게 이 책의 글자들을 번역해주었다고 하니 아들한테서 모든 걸 다 밝혀내야지. >> 그리고 난 아들한테 물었다:

 

- 볼로자, 세상에 수많은 언어가 있다는 거 알지?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기타 등등?

- , 알아요.

- 엄마가 읽을 수 있다는, 아 그리고 너도 읽을 줄 아는 그 책이 무슨 말로 쓰였든?

- 자기 말로 쓰여있는데, 그 글자는 어떤 말로도 얘기할 수 있어요. 아빠가 대화하는 그 언어로도 번역이 돼요. 그런데 모든 낱말을 번역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아빠의 언어에는 글자가 아주 적어요, 아빠.

- 그 즐겁고 온갖 다양한 글자로 쓰였다는 책을 내게 가져올 수 있겠니?

- 아빠한테 책 전부를 가져오지는 못해요. 조그만 글자 몇 개는 가져올 수 있어요. 하지만 가져올 필요가 없어요. 그냥 제자리에 두는 게 더 좋아요. 아빠가 원하시면 나는 여기서도 글자를 읽을 수 있어요. 엄마처럼 빨리 읽지는 못하지만요.

- 능력껏 읽어보거라.

 

볼로자는 일어서서 공중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함께 짓기>> 책에 담긴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 삼라만상은 생각이니라. 생각에서 꿈이 태어났으니, 그건 일부 보이는 물질이다. 내 아들아, 너는 무극이다. 영원하리라. 네 안에 짓는 꿈이 있느니라. >>

아이는 마디 마디 읽었다. 난 그 애의 표정을 주시했다. 표정은 매 마디를 읽을 때마다 약간씩 변했다: 놀란 표정인가 하면, 이내 주의 깊은, 혹은 즐거운 표정으로 변화했다.  그런데 그 애가 조그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암만 봐도, 공중에는 글 마디는커녕 어떤 글자도 볼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아들의 이상한 독서법을 중단했다:

 

- 잠깐만, 볼로자, 그런데 공중에 무슨 글자가 보이지? 왜 내겐 안보일까?

 

그 애는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얼마간 생각하더니 자신 없게 입을 열었다.

 

- 아빠, 정말 저기 자작나무, 소나무, 잣나무, 마가목나무, 안 보여?

- 그건 보이지만 글자가 어디에 있다고?

- 저게 바로 우리 창조주께서 글을 쓰는 글자들이에요!

 

아이는 온갖 식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마디마디 읽기를 계속했다. 난 놀라운 걸 깨달았다. 호수 주위의 온 타이가가, 내가 아들과 지금 앉아있는, 그리고 전에 아나스타시아와 여러 번 앉아있던 호숫가의 온 타이가는 식물로 충만해있는 것이었다. 식물 각각의 명칭은 특정한 글자로 시작되었고, 그 중 몇몇은 이름이 몇 가지나 되었다. 이름에 이름, 글자에 글자가 어울려 마디가 되고, 더 나아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었다. 추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나스타시아 빈터 주위의 타이가 온 공간은 혼돈적으로 자라는 나무나 덤불, 돌로 그냥 채워진 게 아니었다. 아나스타시아 빈터 주위의 넓디넓은 공간은 정말로 산 글자-식물로 그려진 것이다. 이 놀라운 책은 한없이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같은 이름의 식물이라도 북에서 남으로 읽으면 한 단어와 문장이 되고, 서에서 동으로 읽으면 다른 말이 되었다. 엄격히 원을 그리며 읽으면 또 다른 말이 되고, 해가 지나는 궤도에 따라 또 다른 단어, 문장, 형상이 식물의 이름에서 나왔다. 햇빛이 글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나는 왜 볼로자가 글자들이 즐겁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보통 책에서는 모든 인쇄 글자가 서로 다 비슷하다. 그런데 식물 글자는 같은 종류의 식물이라도 항상 여럿이다. 햇빛을 여러 각도에서 받으며 잎을 살랑이고 사람을 반기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한 없이 쳐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누가, 언제, 몇 세기에 걸쳐 이 놀라운 책을 써놓았을까? 아나스타시아의 조상들이? 아니면? 나중에 아나스타시아로부터 간단명료한 답을 들었다: << 나의 조상님들이 대대손손 수천 년에 걸쳐 이 책의 글자들을 원래의 순서 그대로 보존한 거야. >>

나는 아들을 쳐다보며,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대화의 소재를 찾느라 애를 태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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