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왜곡된 역사

haanbs 2007. 12. 23. 16:37

왜곡된 역사

 

아이는 펼쳐진 책을 왠지 왼손으로 받아 들고는 잠자코 있다가 인쇄된 글을 읽기 시작했다: << 고대의 사람들은 혹한도 추운 겨울도 없는 더운 곳에서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라 무리를 지어 살았는데 학자들은 이를 사람의 무리라 부릅니다. 무리에 속한 크고 작은 사람 모두는 채집을 했습니다. 먹을 수 있는 뿌리, 야생의 과일과 열매, 새알 등을 하루 종일 찾아 모았습니다. >>

이 문장을 읽고 난 아들은 책에서 머리를 떼고 뭔가를 묻듯이 내 눈을 직시했다. 질문을 파악하지 못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볼로자는 혼란스러운 듯 말을 시작했다.

 

- 아빠, 나는 상상이 안 돼요.

- 무슨 상상?

- 어떤 상상도 안 돼요. 상상력이 망가졌거나, 내 상상력이 이 책에 쓰여진 것을 떠올리지 못하는 거에요. 엄마 아나스타시아와 할아버지들이 말씀하실 때에는 모든 게 분명하게 떠올라요. 의 책을 읽을 때는 더 분명히 떠올라요. 그런데 이 책에 쓰여진 것으로는 왠지 일그러진 상상이 아니면 내 상상력이 망가진 거에요.

- 뭘 상상할 게 있는데? 왜 상상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 상상은 저절로 되는 거에요. 사실이라면 그런데 지금은 안 돼요. 그러니까 내가 한번, 한번 확인해 볼게요.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찾았다는데 그 사람들, 책에 쓰여있는 그 사람들한테 눈이 없었던 건 아닐까요? 먹을 게 언제고 곁에 있는데 왜 하루 종일 먹을 걸 찾았지요?

 

 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이한테 일어났다. 아이는 문득 눈을 지긋이 감더니 한 손으로 주변의 풀밭을 더듬기 시작했다. 뭔가를 찾아서는 뜯어 먹었다. 그리고는 두 발로 일어서서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 코도 없었나 봐요. >>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막고 저쪽으로 갔다. 코에서 손을 떼지 않고 15미터 정도 가서는 풀밭에 누워 <<아 아>> 비슷한 소리를 냈다.

그러니 바로 주위의 모든 것이 움직이는 듯 했다. 나무 위에서 다람쥐 몇 마리가 바로 땅으로 내려왔다. 다람쥐들은 낙하산처럼 발을 활짝 펼치고 꼬리를 잔뜩 부풀려서 풀밭으로 뛰어내렸다. 풀밭에 누운 아들한테 뛰어와서 그 아이 머리맡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다시 풀밭을 뛰어 나무로 튀어 오르더니 땅으로 낙하하기를 반복했다.

좀 거리를 두고 서있던 세 마리의 늑대도 풀밭에 누운 아이한테 뛰어가서는 좀 불안한 듯 아이 곁에서 서성였다.

후드득 거리는 나뭇가지 소리가 들리고, 덤불 속에서 건장한 곰 한 마리와 덩치는 좀 작지만 더 북실북실한 곰 한 마리가 서둘러 뒤뚱뒤뚱 나타났다.

첫 번째 곰은 아이의 머리에서 킁킁 냄새를 맡았다. 여전히 코를 쥐고 있던 아이의 손을 핥았다. 덤불 속에서는 크고 작은 타이가의 짐승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짐승들은 풀밭에 누워있는 작은 사람 주위를 불안한 듯 서성거렸다. 이때 짐승들은 다른 짐승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다. 짐승들은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나도 처음에는 아들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후에야 깨달았다. 그 애는 시각과 후각을 다 잃은 불쌍한 사람 흉내를 냈던 것이다. 가끔씩 그 애가 내는 << 아 아>> 소리는 그가 배고프다는 걸 알리는 신호였다.

다람쥐는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며 풀밭에 누워있는 아이 곁에 잣방울이며 마른 버섯, 그 외 여러 가지를 가져다 쌓았다.

다람쥐 한 마리는 뒷발로 서서 앞발로 잣방울을 쥐고 이빨로 재빨리 잣 알을 빼내기 시작했다. 다른 한 마리는 잣 알을 깨물어서 껍질을 까서는 속 알을 모아 쌓았다.

그런데 사람은 먹을 걸 받지 않았다. 그 애는 여전히 눈을 감고 손으로 코를 막은 채 누워 점점 더 <<아 아>> 소리를 집요하게 냈다.

덤불 속에서 흑담비가 전속력으로 뛰어 나왔다. 털이 복실복실하고 작고 예쁜 짐승이다. 그 놈이 풀밭에 누워있는 아이 주위를 두 바퀴 돌았다. 모여 든 다른 짐승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돌았다. 아이의 이상한 행동에 정신이 팔린 다른 짐승들도 담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담비가 다람쥐들이 까 놓은 잣 알 쌓아 놓은 곳에 급히 멈춰서 먹기 시작하자 짐승들이 반응을 보였다. 늑대들이 가장 먼저 이빨을 으르렁 드러내고 털을 세웠다. 제자리에서 한발을 번갈아 가며 들었다 놓았다 하던 곰은 처음엔 동작을 멈추고 이 식충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그 놈의 옆구리를 찰싹 후려갈겼다. 담비는 데굴데굴 옆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다시 벌떡 일어나자마자 누워있는 아이 쪽으로 재게 뛰어왔다. 그러더니 아이의 가슴에 앞발을 집고 일어섰다. 아이가 다시 조르는 <<아 아>> 소리를 내자마자 담비는 사람의 열린 입에 주둥아리를 갖다 대고 자기가 씹은 음식을 분명 그 속에 털어 넣었다.

드디어 볼로자가 풀밭에 일어나 앉았고, 눈을 뜨고 누르고 있던 코를 풀었다. 그 애는 아직도 흥분상태의 짐승들을 한 번 휘 둘러보고 일어서더니 짐승들을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짐승들은 자기들끼리만 아는 무슨 서열에 따라 순서대로 아이한테 다가갔다. 그리고 각자 모두는 자기 식대로 보상을 받았다. 늑대는 어깨 부분에 토닥거림을 받았다. 볼로자는 곰 중 한 마리를 두 손으로 주둥이 부분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두 번째 곰은 왠 일인지 코를 손으로 문질러 주었다. 그 애 발 아래서 바삐 움직이는 담비를 발로 살짝 밟았더니 그 놈은 폴짝 등으로 뒤집어졌다. 이때 아이는 담비의 가슴을 긁어줬다.

짐승들은 상을 받자마자 곧바로 다 조용히 사라졌다.

볼로자는 풀밭에서 껍질을 깐 잣을 한 줌 집어 들고는 다람쥐들한테 무슨 신호를 내렸는데 그건 분명 잣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는 뜻인 듯 했다. 아이가 짐승들을 안심시켰음에도 짐승들은 여전히 아이를 먹이려 했던 것이다. 이제는 그 행동을 바로 멈추었다. 조그만 나의 아들은 내게 다가와 한 줌의 잣 알을 건네며 말했다:   

-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상상으로는, 아빠, 지구에 살기 시작한 처음의 사람들은 하루 종일 채집을 하며 먹을 것을 구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 사람들은 먹을 것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아빠. 나의 상상은 아빠가 가져온 책에 똑똑한 학자들이 적어놓은 것과는 달라요.

- 그래. 그렇구나. 전혀 다르구나.

 

나는 다시 봉긋한 곳에 앉았다. 볼로자도 바로 곁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물었다:

 

- 그런데 왜 다르지요? 나의 상상하고 책에 쓰인 것하고?

 

이 순간 나의 생각은 빠르게 작동했나 보다. 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빨랐던 적이 없었다. 정말. 왜 어린이 교과서에 그런 이상한 소리가 쓰여있는 것일까? 열대처럼 따뜻한 기후대에는 온갖 먹을 게 사방에 지천으로 널려 있음은 야생의 자연을 잘 모르는 어른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맘모스나 코끼리 같이 거대한 동물들도 자기 먹을 것을 얼마든 구하질 않았나. 작은 동물들도 굶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지적 능력이 가장 발달한 사람이란 존재는 하루 종일 먹을 걸 찾아 다녀야 했다? 그런 장면은 정말 상상하기 어렵다. 역사책을 읽는 사람 대부분은 책에 쓰인 말의 뜻을 새기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읽은 내용을 가장 기초적인 논리와도 대조해보지 않고 과거의 역사를 알려주는 대로 인식한다. 텃밭을 한 200 평 가꾸는 다츠니키한테, 내 이웃이 먹을 게 많은 텃밭을 하루 종일 헤매면서도 먹을 걸 찾지 못한다고 말해보시라. 다츠니키는 내 이웃집 사람이 약간 맛이 간 사람 아니냐고 생각할 것이다.

타이가에서 자라는 온갖 식물과 열매를 맛 본 아이는 먹을 게 항상 곁에 있는데 왜 찾아 헤매야 하는지 상상이 가질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주변의 짐승들이 언제라도 그 애한테 봉사할 태세가 돼있다. 아이는 잣을 따러 나무에 기어 오르거나 심지어는 껍질을 까지 않아도 된다.

전에 내가 관찰한 현상인데, 아나스타시아 가족의 영역에 사는 짐승들 암컷 모두는 아나스타시아가 난 어린아이를 자기 새끼로 인식한다. 이 현상에 대해서는 나 말고도 많은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 짐승이 사람의 어린애한테 젖을 먹인 경우는 많다. 개가 고양이 새끼에게 젖 주는 걸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고양이가 강아지를 젖 주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람을 대하는 짐승들의 태도는 특별하다.

타이가에 사는 짐승들은 항상 자기 영역에 표시를 한다. 아나스타시아 가족은 짐승들이 표시한 영역 내에 산다. 때문에 짐승들은 아나스타시아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 왜 모든 짐승들이 사람에 주의를 기울이고, 또 사람을 섬기지 못해서 안달일까? 왜 이들 모두한테는 사람의 다정함이 필요할까? 우리가 사는 현대의 아파트 안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고양이, , 앵무새 등 여러 짐승들이 사는데, 모두가 사람한테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으려 한다. 다정함은 이들에게 최고의 상()이다. 그 중 다른 누구에 더 관심을 주기라도 하면 질투도 한다. 이런 상황은 일상적인 것이며 흔한 일이다. 여기 타이가에서는 그게 좀 특별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동일한 것이다. 모든 동물들이 기를 쓰고 얻으려는 것은 사람한테서 나오는 빛, 보이지는 않지만 기분 좋게 하는 빛, 또는 기분, 그 외 다른 무슨 빛의 방출을 얻으려는 때문이다. 이 분명한 사실을 어떻게 이름 짓느냐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게 자연에 있는 현상이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 처음부터 원래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이 동물을 길들인 걸일까? 사람이 모두를 길들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대륙과 나라에서 다양한 짐승과 새들이 사람한테 봉사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 주인을 알아본다. 인도에서는 코끼리와 원숭이가 그렇고, 중앙아시아에는 낙타와 당나귀가 있다. , 고양이, , , , 거위, , 돌고래는 도처에 있다. 모두를 다 열거하기가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봉사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누구나 다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언제 시작된 것일까? 3천 년 전, 5천 년, 1만 년 전? 창조주께서 자연을 지을 때부터 아예 그렇게 구상된 것은 아닐까? 아마 그럴 것이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 모든 짐승들의 소명을 정하라. >> 원래부터 그렇게 구상되고 실현되었다면,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는 문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역사 책에는 정반대로 기술되고 있을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그런 엉터리가 사람들 뇌리에 주입되고 있다. 실수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 이면에는 단순 실수 이상의 무엇이 있을 것이다. 숨은 의도가 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담 누구에게? ? 만약 달리 기술한다면? 사실을 기록한다면? 전 세계의 교과서에 이렇게 쓴다면? : << 우리 지구에 산 사람들은 원래 아무런 음식 걱정이 없었습니다. 사람들 주위에는 건강하게 사는데 이로운 최고의 먹거리들이 지천으로 있었습니다. >> 그러면 그리하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는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 그 다양하고 풍성한 것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대? 왜 현대인들은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노예처럼 일을 해야 하지? >> 더 중요한 이런 질문도 있을 수 있겠다: << 인류 사회의 작금의 발전 방향은 얼마나 완벽할까? >>

<<똑똑한>> 책 교과서에 왜 이런 엉터리가 쓰여있는지 난 이제 아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열대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하루 종일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을까? 충성스런 짐승들 속에 섞여 사는 내 아이는 <<똑똑한>> 사람들이 쓴 내용을 상상하지 못한다.

나는 아나스타시아의 말이 생각났다: << 실제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의 몫이야. >>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난 아들에게 말했다:

- 이 책은 그리 단순한 책이 아니다. 책에 쓰인 것 모두를 너의 상상으로 검증해 보거라. 네가 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거라면 왜 책에다 썼겠니? 그래서 꺼꾸로 쓰는 거야. 어디에 진실이 있고 어디가 그 반대인지 네가 상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말이다.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해. 볼로자, 내 말 알아듣지?

- 왜 거짓을 써야 하는지 알려고 노력해 볼게요, 아빠. 아직은 모르겠어요. 어떤 짐승들은 꼬리로 자기의 흔적을 지워요. 가짜 굴을 파는 녀석들도 있고요. 덫을 만드는 놈도 있긴 해요. 그런데 사람들한테 그런 덫이 왜 필요하지요?

- 발전하려고 그러지.

- 진실로서는 발전할 수 없나요?

- 진실로도 가능하지 하지만 그게 결과가

- 아빠, 아빠가 사는 그곳에서는 진실로 발전하나요 아니면 거짓으로?

- 온갖 것으로 다. 진실로도, 그리고 거짓으로도 발전의 효과를 높이려 하는 거야. 그런데 볼로자, 너 책은 자주 읽니?

- 매일요.

- 어떤 책? 누가 책을 주는데?

- 엄마 아나스타시아가 아빠가 쓴 책 모두를 내가 읽게 주셨어요. 난 그걸 금방 다 읽었어요. 나는 매일 매일 다른 책을 읽어요. 그 책은 글자가 훨씬 즐겁고 다양해요.

 

처음에 나는 즐겁고 다양한 글자가 들어 있다는 무슨 이상한 책에 대한 그 아이의 말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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