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아들과의 대화2

haanbs 2007. 12. 14. 09:42

주변이 잠잠해진 것으로 나는 아나스타시아가 뒤에서 조용히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내 등을 무언가가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 것으로 그녀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아나스타시아뿐이었으니까. 그녀의 시선을 느꼈지만 나는 바로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따뜻하고 반가운 온기를 얼마간은 그냥 앉아 느꼈다. 그러다 뒤돌아서 바라보았다

내 앞 풀밭에는 아들이 늠름하게 서있다. 많이 컸다. 아마 빛 머리카락은 너울너울 어깨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애는 쐐기풀 섬유로 짠 칼라가 없는 짧은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 아나스타시아를 많이 닮았다. 나도 좀 닮은 듯 한데 단박에 다 알 수는 없다. 난 손을 땅에 짚고 뒤로 돌은 채 그대로 그 아이를 쳐다만보고 있었다. 내 사지(四肢)는 얼어붙었고 세상의 모든 것이 망각상태였다. 그 아이도 잠자코 아나스타시아의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엉겁결에 일어난 일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그 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아빠의 밝은 생각 안녕, 나의 아빠.

- 그래? 너도 안녕. 난 대답했다.

- 아빠, 죄송해요.

- 뭐가?

- 내가 아빠의 중요한 생각을 끊어서요. 처음엔 아빠한테서 좀 떨어진 곳에 서서 방해 안 하려고 했는데, 다가와서 옆에 있고 싶었어요. 아빠가 생각을 마칠 때까지 조용히 옆에 앉아있어도 돼요?

- ? 어 그래. 그래 앉아 있어.

 

그 애는 얼른 다가와 두어 발짝 거리를 두고 앉아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계속 네 발로 앉은 채, 그 애가 자기를 잡고 앉기까지 이런 생각을 했다: << 깊은 생각을 하는 척 해야지. 그래야 저 애가 내가 중요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나서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

나는 점잖은 자세를 취했고, 그리고 우리 둘은 얼마간 가까이 앉아 침묵했다. 얼마 후 나는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 나의 작은 아들한테 잠자코 돌아 물었다:

 

- 그래, 어떻게 지내니? [1]

- 그 애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는 화들짝 반갑게 정신을 차리고 내 쪽으로 돌아 나의 눈을 직시했다. 나는 그 애의 시선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애는 나의 단순한 질문에 답을 하려 애써보았지만 어찌 답할지를 몰랐다. 그러다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 아빠, 난 아빠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겠어요. 나는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몰라요. 아빠, 여기선 삶이 되어 가요. 삶은 좋아요.

<<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야겠어. 난 생각했다. 기회를 놓치면 안돼. >> 그리고 나서 한 번 더 흔히 하는 질문을 했다:

 

- 그래, 너는 여기서 어떻게 지내니? 엄마 말씀 잘 듣고?

그 애는 이번에는 즉답을 했다:

- 엄마가 말씀하시면 언제나 기쁘게 들어요. 할아버지들이 말씀하실 때도 나는 재미있게 들어요. 나도 그 분들께 얘기하고 그 분들도 내 말을 들어요. 엄마 아나스타시아는 내가 말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세요.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엄마 아나스타시아는 말씀하세요. 그런데 나는 생각이 빨라서 여러 방법으로 말하고 싶어요.

- 여러 방법이라니?

- 할아버지들처럼요. 낱말을 낱말에 뒤이어 놓는 거요. 엄마처럼. 그리고 아빠처럼요.

- 내가 낱말을 어떻게 놓는지 너는 어떻게 알지?

- 엄마가 내게 보여주었어요. 엄마가 아빠 말로 얘기하면 나는 아주 재미있어요.

- 그래? 그런가 그럼 너는 누가 되고 싶니?

 

어른들이 몇 번이고 던지는 이 진부한 질문을 그 애는 또 다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잠시 후 대답했다.

 

- 아빠 난 이미 있어요[2]

- 있는 건 알아. 내 말은 네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느냐 이 말이야. 커서 뭘 할래?

- 커서 나는 아빠처럼 될래요. 아빠가 지금 하는 거 이어서 할 거에요.

- 내가 뭘 하는지 어떻게 알지?

- 엄마 아나스타시아가 말해주었어요.

- 그래, 엄마가 나에 대해 뭐라 말씀하시던?

- 많이 말씀하셨어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그 뭐더라, , 생각났다. 아빠가 영웅이라고 엄마 아나스타시아 말했어요, 나의 아빠.

- 영웅?

- , 아빠는 힘들어요. 엄마는 아빠 일이 좀 쉬어졌으면 해요. 아빠가 사람이 살만한 좋은 곳에서 쉬었으면 해요. 그런데 아빠는 사람이 아주 살기 어려운 곳으로 떠나요. 아빠가 사는 곳도 좋아지도록 아빠는 그리로 떠나는 거에요. 빈터가 없는 사람들도 있고, 또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게 항상 겁을 준다는 걸 알고, 난 아주 슬펐어요. 이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대요. 그 사람들이 해야 하는 건 , 그래요, 일이라는 걸 해야 해요. 이 사람들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누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요. 그러면 종이쪽지-돈을 준대요. 나중에 이 돈을 음식과 바꾸는 거에요. 이 사람들은 달리 사는 방법을 모르고 삶에 기뻐하는 걸 잊어버렸대요. 그리고 아빠가 찾아 떠나는 곳은 사람들한테 힘든 곳이에요. 거기서도 좋아지도록 그러는 거에요.

- 그래? 떠나지 어디든 자 좋아야 해. 그래 너는 내가 하는 좋은 일을 어떻게 이으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지금 무슨 준비를 하고 있니? 공부를 해야하는데

- 공부하고 있어요, 아빠. 나는 공부가 무척 좋아요. 노력하고 있어요.

- 무슨 공부, 무슨 과목을 공부하고 있지?

 

그 애는 또 다시 질문을 바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답했다:

 

- 모든 과목을 공부해요.   

 



[1] 직역하면, 너의 여기 일이 어떻게 되어 가니?

[2] 아빠 난 이미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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