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아들과의 대화

haanbs 2007. 12. 13. 08:40

아들과의 대화

 

강에서 아나스타시아 빈터까지 나는 독자 행군을 했다. 낯익은 곳에 다다르자 집에 온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 안내인 없이 타이가를 혼자 걸으니 기분이 으쓱하기까지 했다.

나는 소리를 질러 아나스타시아를 부르지 않았다. 자기 일에 바쁜지도 모른다: 일을 마치면 내가 온 걸 느끼고 이쪽으로 다가오겠지.

아나스타시아와 함께 종종 앉아있곤 했던 호숫가가 보였다. 먼 길을 걸었으니 앉아 숨을 돌려야 했지만 우선은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마음먹었다.

어깨가방에서 구김이 잘 가지 않는 양복과 하얀색의 얇은 티셔츠 그리고 새 신을 꺼냈다. 타이가 임행(林行)을 준비할 때, 넥타이와 와이셔츠도 가져가고 싶었지만 와이셔츠는 구김을 많이 타고 타이가에서는 다릴 수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단념하고 말았다. 양복을 구겨지지 않도록 상점에서 포장을 해주었다.

나는 아들 앞에 우아하고 성대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었기에 외모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나는 수동 면도기와 거울도 챙겼다. 거울을 나무에 기대놓고 면도도 하고 머리도 빗었다. 봉긋한 곳에 앉아 메모장과 펜을 꺼내서 오던 중에 생각난 것을 아들과의 만남 계획에 덧붙여 써넣을 참이었다.

내 아들은 이제 곧 만 다섯이 된다. 그 아이는 이제 말을 할 줄 알겠지. 그 애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갓난아기였다. 그땐 말도 할 줄 몰랐지만 이젠 생각도 깊겠지. 아나스타시아나 할아버지들과 하루 종일 재잘거릴지도 모른다. 나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아나스타시아를 보자마자 내가 아들과의 만남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그 얘한테 무슨 말을 할 건지 바로 말해줘야지.

나는 지난 오 년간 어린이 보육에 대한 다양한 시스템을 공부했고, 그 중 최상이라고 생각되는 것만을 취했다. 교육자들, 아동심리학자들을 만나면서 내게 필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제 아들을 대면하기에 앞서, 내가 작성한 계획과 내가 내린 결론을 아나스타시아와 상의하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모든 걸 다 깊이 생각해보고자 했다. 아들을 보자마자 최고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아나스타시아한테 물어봐야지. 자세도 중요해.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보여야 해. 난 이렇게 생각했다. 우선은 아나스타시아가 아들한테 나를 먼저 소개해야겠지.

나의 수첩 첫 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아나스타시아가 나를 아들한테 소개하기>>

아나스타시아가 평범한 말로 나를 소개하면 될 거야: << 아들아, 봐라. 네 앞에 계신 분이 네 아버지다. >>

이렇게 말할 때 아나스타시아의 자세는 아주 엄숙해야 해. 그래야 그 목소리를 듣고 아이가 자기 아버지의 중요함을 알아차리고 나중에 아버지 말을 존중하게 될 거야.

그때 문득, 주변의 모든 것이 입을 다문 듯,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갑작스런 정적에 난 놀라지 않았다. 타이가에서 아나스타시아와 조우할 때는 항상 그랬다. 외래인(外來人)이 자기들 여주인에 무슨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며, 타이가와 그곳의 모든 거주자들은 함께 귀를 쫑긋하고 긴장상태에서 상황판단을 하려는 듯 잠잠해지곤 했다. 그러다가 호전성이 없음을 느끼고는 모든 것이 이내 평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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