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우리의 현실

haanbs 2007. 10. 9. 23:43

우리의 현실

 

우리한테 문을 열어준 여인은 매혹적이며 끌어당기는 데가 있었다. 얼른 보기에 서른 살이 조금 넘어 보였고 여성스럽게 부드러우며 약간 수줍은 기가 있는 통통한 여자였다. 아니, 뚱뚱하지는 않았다. 남자를 충동질하는 몸매를 여전히 보존하고 있었고 그건 밖으로 새나오고 있었다. 하늘하늘한 가운은 그걸 감추지 못했다. 어린 아이를 닮은 목소리와 상냥한 미소는 상대방을 금방 편하게 만들었다.

 

- 안녕들 하세요, 방랑자 여러분? 들어오세요. 어서 들어요. 스베틀라나(Svetlana가 당신들 얘기를 전하더군요. 시내 구경하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고요?

- 하고 싶지. 그것도 반드시 아름다운 여러 미인들하고. 블라지슬라브가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거기 내 스베틀란카[1] 는 어떻게 지나지,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겠지?

- 우리가 언제 누구와 바람을 피운다고 그래요? 우리는 평생 기다리기만 하다 죽을 거에요.

- 기다리긴 뭘 기다려? 내가 여기 있는데. 친구도 데려왔고. 시베리아 사람이야. 골수 사업가지. , 인사해.

그녀는 꼭 묶은 검은 댕기머리를 고쳐 잡았고, 수줍게 내리 뜬 눈썹은 위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정욕에 이글거리는 눈이 숨어있었다. 그리곤 내게 손을 내밀었다.

- 안녕하세요. 레나(Lena)라고 해요.

- 블라지미르입니다. 통통한 손을 쥐며 나도 자기 소개를 했다.

레나가 부엌에서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그녀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구경하고 샤워를 했다. 아파트 정돈 상태가 내 맘에 꼭 들었다. 실내구조는 다른 집과 다름없이 평범했는데 집을 가꾼 모습이 청결하고 안락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게 똑 제자리에 알맞았고 하나도 넘침이 없었다. 침실의 벽지는 터키옥색에 꽃무늬가 들어있고, 벽지 색에 꼭 맞춘 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다. 널찍한 침대를 덮고 있는 침대보도 딱 들어맞는 색조를 띠고 있었다. 이 색감과 다소곳함이 어쩐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 침대에 와서 누우라 부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더 큰 방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블라지슬라브가 집주인의 고급스러운 녹음기를 틀었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 어때, 여 집주인 맘에 들어?                                                        

- 좋은데. 그런데 왜 시집을 안 갔대?

- 그럼 왜 다른 수백만의 여자들은 시집을 안 갔고? 우리 남자들이 모자란다고 자네 못 들었어?

- 들었지. 하지만 여기 주인이 다른 사람하고는 다르잖아. 아름답고, 또 포근한 자기 둥지까지 있으니.

- 그렇긴 해. 돈도 적지 않게 벌어. 최고의 미용사거든. 미용사라기 보다는 스타일리스트라 해야겠다. 미용 대회에 나가기도 해. 돈 많은 부인들이 줄줄이 예약을 하고 돈을 많이 내지.

- 바람둥이 여자겠지.

- 아니. 스베트카가 그러는데, 자기들이 학교 같이 다닐 때, 렌카[2]는 상급반의 한 열등생하고 사귀다가 졸업하고는 그를 차 버렸대. 그런데 그 놈은 레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레나를 바래다주는 아이들한테 시비를 걸었다는 거야. 렌카가 보는 앞에서 그 아이들을 죽도록 팼대요. 깡패짓거리도 했고. 그런데 레나는 그 놈을 불쌍히 봐서 한 번도 그에 불리한 증인이 되지 않았다는 거야. 거의 실신상태여서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다고 말했다는 거야. 그 놈이 고위직 아버지를 둔 아이를 불구자로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 딱 한 번 책임을 물었다는군.

- 그럼 저 여자 불감증이야. 그러니까 남자가 필요 없지.

- 불감증 같은 소리! 그녀가 자네를 묘한 눈으로 쳐다보는 거 눈치 못 챘어? 구렁이 토끼 보 듯 하더만. 지금 당장이라도 침대에 뛰어들 걸.

- 과장하지 말게.

- 흠 잡으려 들지 말고 즐기세나. 기회를 이용하자고. 한 번 놀아보자고 했잖아. 자 한 번 놀아보자고.

레나는 멋진 쟁반에 커피를 내왔다. 몸에 착 달라붙는 민소매 원피스로 갈아입었고 화장도 옅게 해서 전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리고 말했다:

- 지금 뭘 조금 들고 싶으시다면, 빨리 준비할 수 있어요.

- 아니, - 블라지슬라브가 답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자고. 자네가 한 번 전화해봐. 이곳에서 최고 좋은 곳으로 네 명 예약을 하라고.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레나는 전화를 걸어 자리를 예약했다. 그녀의 전화 통화로 봐서는 분명 아는 사람과 통화하는 것 같았다: << 좋은 자리로 봐줘. 오늘 아주 멋진 기사(騎士)와 함께 할 거니깐. >>

시내와 교외의 관광명소를 돌아보며 드라이브한 후 저녁에 레스토랑에 당도했다.

값비싼 제복을 입은 종업원이 친절하게 문을 활짝 열어주며 우리를 안으로 맞았다. 총지배인이 우리를 입구 반대편 탁자로 안내했다. 자리는 정말 훌륭했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여 무대를 포함 레스토랑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고급스러운 이 레스토랑은 벽면과 천정이 부조로 아름다웠고 홀에는 벌써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 레스토랑에서 즐길만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들뿐일 것이다. 우리도 오늘은 한껏 기분을 내보기로 작정하고 비싼 고급 안주와 좋은 포도주 그리고 내가 마실 보드카 한 병을 주문했다. 오케스트라 악단이 무슨 탱고 춤곡을 연주하자마자 블라지슬라브가 모두에게 나가서 춤을 추자고 제안해서 우리 모두는 무대로 나갔다. 내가 살짝 안은 레나의 편안하고 풍만한 몸이 요리조리 움직였다. 그녀의 체취(體臭)와 시선은 이미 좀 취한 나를 더욱더 취하게 만들었다. 아래로 내려간 레나의 속눈썹이 가끔씩 위로 향했고 두 눈은 앞으로 있을 뜨거운 열정에 타는 듯 나를 다정히 직시했다.  그러다 뜨거운 시선은 이내 숨을 죽인 듯,다시 아래로 처졌다.

테이블로 되돌아오니 그 동안 겪은 고통과 탐구의 수고가 다 잊혀지고 없었다. 술 취한 게 좋아서 블라지슬라브, 레나, 그외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따지지 않고 살고 좋은 것만 누리면 멋지게 잘 살 수 있구나.   

나는 모두의 잔에 포도주를 따르고 내 잔에는 보드카를 부었다. 건배를 하려는데 블라지미르가 막고 나섰다. 자기 짝 스베틀라나와 춤을 추고 나선 왠지 안절부절못했다. 담배를 피워 물었는데 담뱃재가 샐러드에 떨어졌다. 마시자고 권하지도 않고 자기 혼자 포도주를 한 입에 털어 넣고 말이 없다. 의자에 앉아 조바심을 낸다. 내가 잔을 들고 건배를 하려 하자 그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 잠깐, 일이 있어서 자 나가자고. 할 얘기가 있어. -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아가씨들은 여기서 잠시 수다를 떠세요. 우리는 잠시 자리를

우리는 레스토랑의 널찍한 홀로 나왔다. 블라지슬라브는 분수 뒤 저쪽 구석으로 나를 끌더니 화가 잔뜩 난 낮은 목소리로 쏴댔다.

- 썅년! 이상하다 했더니 아이, 쌍년.

- 누가 썅년인데? 자네가 스베트카하고 다퉜으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 파티까지 망치지는 말아야지.

- 스베트카가 아니라 렌카가 우리를, 아니, 자네를 함정에 빠트렸어. 나도 도매금에 넘어가겠지만. 내가 자네 혼자 놔두지는 안을 거야.

- 좀 알아듣게 얘기해봐. 그 여자가 어떻게 나를, 아니, 우리를 함정에 빠트렸다는 거야? 누구한테? ?

- 춤추며 내가 스베트카에게 자네 얘기를 했거든. 그랬더니 보자마자자네가 불쌍하다며 스베트카가 말하는 거야. 내게 모든 걸 털어놓았어.

- 무슨 얘길 했길래?

- 렌카는 쌍년이야. 자학증세가 있는 미친년 같아. 아이 구역질 나. 남자들이 달라붙으면 저 여자는 교태를 부리다가 레스토랑으로 같이 간대. 레스토랑 좌석 예약은 반드시 자기가 아는 그 하빠리를 통해서 하고, 그 자는 그 사실을 곧바로 그 깡패 놈한테 전한다는 거야.

- 어떤 깡패 놈?

- 학교 다닐 때 친했다는 그 낙제생 말이야. 어려서 그 놈이 렌카의 남자 친구들을 패주었다고 자네한테 내가 얘기 했었지. 지금은 이 놈이 이 지역 깡패가 되어 깡패짓거리를 한대요. 하여튼, 저 여자는 자기가 아는 자를 통해 좌석을 예약하자마자 그 놈이 깡패한테 전한다는 걸 안다는 거야. 그러면 깡패 놈은 레스토랑을 곧장 직행하는 거고. 그보다는 자기 하수인들과 음침한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레나의 애인을 반쯤 죽도록 패버리는 경우가 많대. 이걸 보고 레나는 오르가슴에 달하거나 뿅가든지 한다는 거야. 스베트카 말은, 이게 그녀의 병이 됐다는 거야. 스베트카한테 한 번은 털어 놓더래. 이런 장면을 보면 가끔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 근데, 그 과거의 낙제생은 왜 이 짓거리를 한대?

- 그걸 누가 알아, 왜 그러는지. 전과 같이 그녀를 좋아하던가 아니면 그 놈도 같이 변태 만족을 느끼겠지. 스베트카 말로는, 렌카는 법적 책임능력이 없는 척 한대. 그 놈은 때려주는 행사를 치른 후 렌카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그녀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는 거야. 그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아무도 모르고.

- 그럼 왜 그 놈은 렌카하고 결혼을 안 한대?

- 그게 자네하고 무슨 상관이야. 결혼을 하든 말든. 내가 말하잖아. 그게 아마 레나의 병인가 보다고. 유년시절이 아직까지 지속되나 보지. 결혼하면 진부해지잖아. 그런데 여기선 뿅 갈 수 있잖아. 일상생활에서 좋을 게 뭐 있나? 병이라니까, 스베트카는.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람. 여기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세.

- 과거의 낙제생한테 일러바칠 수 있다 하니, 레스토랑에서 나가세.

- 늦었어. 그가 이미 하수인들을 대동하고 여기 들어와있어. 우리를 주시하고 있고 스베트카 말로는, 그 자가 우선은 우리 좌석으로 다가올 거래. 레나하고 춤을 추게 해달라고 정중히 허락을 구한다누만. 허락을 하면 춤을 춘대. 거절하면 얌전히 물러난대요. 하지만 끝은 항상 같다는 거야. 숨어서 기다리다가 반쯤 죽도록 패고는 값나가는 게 있으면 그 주변의 기생충들이 뺏는다는 거야. 나는 <<롤렉스>> 시계를 이미 스베트카한테 맡겼어. 자네한테도 그런 게 있다면 맡기게.

- 내겐 값나가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어찌 경찰을 겁 안 낸대?

- 판을 미리 다 짜 놓았다니깐  변호사도 있대 여자를 자기들이 강간범으로부터 구해낸 것처럼 꾸밀 수도 있다는 거야.

- 그러면 레나는 증인으로서 침묵을 하고?

- 썅년, 입을 다물고 아무것도 기억에 없는 시늉을 한대. 쇼크를 받았거나 정신을 잃었던 것처럼. 자네한테 미안하게 됐네. 우리가 꼬임에 빠진 거야. 그런데 내가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어. 뭔가 해야잖아. 싸우는 척 하자구. 우리끼리 행패를 부리면 경찰서로 끌고 갈 거야. 병신이 되느니 유치장에 좀 앉아있다 벌금을 내는 게 낫지.

- 그렇게는 못해. 그 놈들 비위를 맞추느라 나 스스로를 벌할 수는 없어. 우리 비밀 출구로 몰래 빠져나가자구. 그리고 나서 스베트카한테 전화해. 타고 오라고 택시를 불러 놓으면 돼잖아.

- 빠져나가지 못해. 놈들이 벌써 여기 앉아있거든. 우리가 나가려 하면 되돌려 놓을 거야. 그렇게 하다간 두 번 당하게 될 거야. 우리가 계산을 안하고 도망치는 듯 꾸미겠지.

- 방법이 없다면 차라리 실컷 놀아 보자고. 이 놈들 신경이나 건드려 놓자고. 모처럼 좋은 저녁을 망쳐놓다니, 좋았는데.

- 그게 놀아지겠어? 어떻게?

- 신경 끄고 정신 없이 놀아보자고. 아직 시간 있을 때 즐겨보세. 자네는 티 좀 내지마. 태가 되기도 전에 떨지 말라고.

- 나 때문에 떠나?! 자네 때문에 겁이 나는 거지.

- 자 가자고.

우리는 자리로 돌아왔다. 크고 화려한 레스토랑은 여인들의 화려한 성장과 진품 귀금속들로 번득이고 있었다. 수려한 신사들 사이에는 아직 미소녀들도 많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노브이 루스키>>[3] 란 사람들이 놀고 떠들었다. 이들도 러시아의 일부이니 온 러시아가 흥청대고 놀았다 해야겠다. 기회가 생기자마자. 성대하고 거나하게. 그 성대함이란 이제 본 모습을 보이겠지만 아직까지는 모두가 휘황찬란하고 화려할 뿐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잔을 더 부을 수 없을 때까지 채우고 말했다: << , 우리, 최고의 만족을 위해 마십시다. 여기 앉은 우리모두가 순간이나마 타인에게 최고의 만족을 선사합시다. 만족을 위하여! >> 나와 블라지슬라브는 잔을 비웠고 여자들은 반만 마셨다. 나는 의자를 당겨 레나에게 바짝 붙어 앉아 어깨를 감쌌다. 가슴이 푹 패인 옷을 입어 반쯤 노출된 젖가슴에 손을 얹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소근소근 속삭였다. 

- 레나, 자네 예쁘고 편안한 여자야.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야.

처음엔 나의 포옹과 가슴에 얹은 손 때문에 쑥스러운 듯 몸을 빼려 했으나 집요하지는 않았고, 곧이어 오히려 그 반대로 나에게 고개를 약간 기울이기까지 했다. 이렇듯, 놈들의 혹은 그녀의 룰에 따른 놀이가 시작되었다. 나는 스스로도 영문을 모른 채 어떤 어두운 힘의 비위를 일부러 맞추기라도 하듯 놀이에 열중하며 그때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무대 곁에 놓인 한 테이블에서 황소 모가지를 한 건장한 남자가 일어섰다. 녀석은 눈을 떼지 않고 얼마간 우리 쪽을 응시하더니 음악이 울리자 상의 단추를 잠그고 우리 팀이 앉은 탁자 쪽으로 힘차게 다가왔다. 반쯤 왔을까 갑자기 멈춰 서더니 전과 같이 눈을 돌리지 않고 다른 쪽을 응시했다. 일부 여자와 남자는 무언가를 보고 충격으로 넋이 나간 듯 약간 일어서기까지 했다. 나도 모두가 얼어붙은 듯 쳐다보는 곳을 바라보고는 뜻밖의 장면에 실신할 지경이었다.

출구에서 무대 쪽으로 아나스타시아가 걸어오고 있었다. 자유분방하고 충동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걸음걸이, 그녀의 옷차림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 옷차림이라는 게, 고작, 낡았지만 깨끗한 상의, 치마, 그리고 엄마가 남긴 머플러가 전부였는데, 그것이 이번에는 세계 최고의 의상 디자이너가 영감의 분출 속에서 특별히 그녀를 위해 지은 슈퍼 앙상블 같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우아하고 유행의 첨단을 걷는 여성복 모두 그 앞에서는 빛을 바랬다.

그건 아마 그녀의 평범한 의상을 특별한 장신구와 걸음걸이, 그리고 그녀의 자태가 보충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나스타시아의 귓불에는 침엽이 복슬복슬한 초록색 작은 가지가 클립처럼 걸려있었다. 무슨 풀을 댕기 따듯 꼬아 만든 띠가 숱이 많은 황금빛 머리터럭을 흘러내리지 않게 하며 마치 왕관처럼 머리 위에 씌워있었다. 이마 위 띠에는 루비처럼 타는듯한 작은 꽃이 엮여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속눈썹 위에 초록색 색조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입은 치마는 전과 똑 같은 것이로되 허벅지까지 트여있었다. 허리에는 머플러를 리본으로 묶어 허리띠가 연출되었다. 이렇듯 상상을 초월하는 앙상블에 유행 최첨단의 독특한 가방이 더해졌는데, 그건 그녀의 아마포 보자기를 변형해 만든 것이었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막대의 양끝에 천의 끝자락을 묶고 풀로 엮어서 뜬 조그만 자루를 만드니 히피 식 가방이 되었다. 이 모두를 입고 들고, 어떤 슈퍼 모델이나 워킹 모델조차 상상도 못할 행보로 너무도 자유분방하고 확신에 차서 걸었다.    

몇몇 쌍이 무슨 빠른 춤을 추기 시작한 춤 마당에 다다라서는 문득 음악의 박자에 맞춰 쾌활하게 온 몸을 비틀며 몇 번 빙글 돌았다. 이때 탄력적인 그녀의 몸은 각 부분별로 아름다운 움직임을 지어냈다. 그러다 머리 위로 손을 쭉 뻗더니 박수를 치고 미소를 지었다. 장내는 남자들의 박수 소리로 떠나가는 듯 했다. 그녀는 이제 우리 테이블로 향하고 있었다. 두 명의 종업원이 다가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물었고, 그녀는 손으로 우리 좌석을 가리켰다. 종업원 중 한 명은 조각문양이 있는 나무의자를 들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우리 좌석으로 다가오려던 소 모가지 레나 친구를 지나며 아나스타시아는 잠시 멈추더니 그의 눈을 응시하고 한 번 윙크를 보낸 듯하고는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벌어지는 일을 주시하며 마치 화석이라도 된 듯 레나를 계속 안고 있었다. 좌중의 사람들도 모두 말을 하지 못하고 주시하고만 있었다.

아나스타시아는 우리 탁자로 다가와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고 올 데를 온 듯 인사를 건넸다.

- 안녕들 하세요. 즐거운 저녁입니다. 안녕, 블라지미르. 제가 여러분과 함께 잠시 자리를 같이 해도 되겠어요?

- 그럼, 물론이지. 어서와, 아나스타시아.

그녀가 갑자기 나타나 놀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곤 내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서는데 종업원이 친절하게 자기가 가져온 의자를 자리에 내려놓았다. 다른 종업원은 내 접시를 옆으로 밀어놓고 아나스타시아 앞에 새 접시를 내려놓고는 메뉴를 권했다.

- 고마워요. 아직 배가 안 고프네요. 아나스타시아가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히피 가방에 손을 넣더니 거기서 큰 잎사귀에 싼 월귤나무와 크랜베리 열매를 꺼내 접시에 펴놓고 접시를 테이블 중앙에 내놓고는 말했다:

- 드셔보세요.

- 아나스타시아, 갑자기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지? 레스토랑마다 찾아 다녔어?

- 블라지미르, 당신을 찾아 왔지. 당신이 여기 있는 게 느껴져서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어. 크게 방해가 됐어?

- 아니, 전혀. 그런데 왜 그렇게 이상하게 옷을 입었어? 화장도 다 하고?

- 처음엔 옷도 이렇게 안 입고 화장도 안 했어. 그런데 내가 레스토랑에 들어가려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굽실굽실 인사하며 문을 열어주던 문지기가 저지하더라고. 내게는 이렇게 말했어. << 아줌마, 저리가. 여긴 당신이 들어올 데가 아니야. >> 난 물러서서 그늘에 서서 왜 다른 사람들은 통과시키는지 관찰했어. 그리고 알아냈지. 그 사람들 옷차림이 다르고 태도가 나와 좀 다르다는 걸. 금방 다 파악했어. 그래서 거기서 적당한 나뭇가지 2개를 찾아서 끝을 손톱으로 벌리고 귀에 고정한 거야. , 보아. 아나스타시아는 내게 옆을 보이고 돌아서는 자기의 발명품을 보여주었다. 멋있어?

- 좋아.

- 핸드백도 금방 만들었어. 머플러로 허리띠를 만들고 잎사귀와 꽃잎의 즙으로 화장을 했지. 치마를 봉합 선에 따라 찢은 게 아깝긴 하지만

- 그렇게 대퇴부까지 쫙 찢지 않아도 되는데. 무릎까지만 해도 충분했을 걸.

- 통과시키도록 최선을 다했지.

- 연지는 어디서 났어?  당신 입술에 바른 건 진짜 연지인데?

- 이건 여기서 구했어. 입구에 선 사람이 내게 문을 활짝 열어주었을 때, 난 내 모습을 보러 거울에 다가갔지. 궁금하잖아. 거울 주위의 여자들이 서있더니 나를 쳐다보는 거야. 한 아가씨가 다가와 흥분한 듯 내게 말하더라고: << 이 멋진 차림이 다 어디서 난 거야? 나하고 싹 다 바꾸자! 반지와 딸랑이 다 벗어줄게. 원한다면 달러로 지불할게. >>

내가 설명했지. 이런 옷차림은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귀고리 나뭇가지 클립을 먼저 보여줬더니 주위를 둘러싼 여자들도 쳐다보더라고. 한 여자는 계속 이렇게 중얼거렸어: << 세상에! 세상에나! >> 한 여자가 그런 모델과 스타일이 들어있는 잡지를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캐묻기 시작했어. 아 그리고 내게 처음 다가왔던 여자는 말했어. 만일 내가 여기서 장사할 거라면 자기가 여기서 왕언니 이고, 자기는 어떤 기둥서방도 두렵지 않다고 했어. 자기 아가씨들은 다 자유고 자기는 어떤 건달집단도 주물러줄 수 있다고 했어.

- , 그건 안카-푸탄카[4]. 스베타가 거들었다. 필사적인 여자야. 그녀를 다들 무서워하지. 누군가가 그녀를 괴롭히려 들면, 그 여자는 음모를 꾸며 시비를 붙여. 무서운 판이 되지.

- 필사적이라 - 아나스타시아가 깊은 생각에 잠겨 말했다. 그런데 눈은 서글펐어. 그녀가 불쌍했어. 무엇이든 그녀를 위해 해주고 싶었어. 그녀가 나한테서 나는 냄새를 맡고 무슨 향수냐고 물었을 때, 난 그녀에게 잣 기름이 든 나무토막을 선물했어. 사용방법도 가르쳐주었지. 그랬더니 자기 친구들에게도 뿌려주더라고. 내게는 립스틱과 입술 윤곽선을 그리는 연필을 선물했어. 내가 해보는데 처음에는 잘 안 되더라고. 그래서 우린 웃었지. 그러자 그녀가 나를 거들어 주며 말했어: <<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찾아 >> 그녀가 나를 별도로 준비된 테이블로 초대했는데 난 내 친구들과 인사만 나누려고 들렀다고 했어 - 아나스타시아는 머뭇머뭇하다 잠시 생각을 하고 말했다. 블라지미르 당신하고, 그리고 여러분들하고요. 블라지미르, 바다에서 해안으로 바람이 불고 있어, 공기가 좋지. 당신 나하고 시내를 좀 산책하지 않을래? 아니면 여기 친구들과 조금 더 있을 거야? 당신이 마칠 때까지 기다릴게. 아니면 내가 내가 크게 방해가 된 건 아닌지?

- 아니, 전혀 방해가 안 됐어, 아나스타시아. 당신이 와줘서 무척 반가워. 처음엔 당신이 나타나서 정신이 없었어.

- 정말? 그럼 같이 가서 해변에서 산책할까? 둘이서? 아니면 모두 함께? 어떻게 하지?

- 아나스타시아, 둘이서 가지.

그런데 빠져 나오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엘레나의 친구 녀석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도 아나스타시아의 급작스런 출현에 꽤나 당황했나 보다. << 아까 바로 당장 떠날 걸. >> 난 생각했다. 이젠 늦었어. 놈들이 변태 시나리오를 시작한 거야. 엘레나도 마음 속으로 준비를 한 듯 몸을 추스르고 눈을 내리뜬 채 머리카락을 단정히 가다듬기 시작했다. 테이블로 다가온 놈은 자기의 레나가 아닌 아나스타시아에게 다가갔다. 아나스타시아 이외의 사람은 완전히 무시한 채, 그녀에게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가씨, 춤을 한 번 추실까요? 하며 물었을 때, 엘레나는 놀라서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아나스타시아는 일어서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춤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제 자리에 좀 앉으세요. 당신이 있을 곳이에요. 저는 지금 춤을 출 기분이 아니랍니다. 나는 나의 기사님과 지금 막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나갈 참이었어요.

놈은 아나스타시아한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녀의 말에 순순히 복종하며 자리에 앉았다. 우리 둘은 출구로 향했다.

나는 레스토랑에서 멀리 벗어나 아나스타시아의 원대로 잠시 산책을 하고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시간은 저녁 열 시쯤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가로수 길에서 벗어나 바위 해변으로 내려가려는데, 브레이크가 찍 밟히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았다. 길섶에 정차한 지프 차에서 건장한 남자 다섯이 내려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우리를 둘러쌌는데 그 중에는 소 모가지를 한 그 낙제생도 보였다. 우리를 포위한 네 놈들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그 놈이 말을 걸었다:

- , , 식당으로 돌아가야지. 네가 없어서 한 여인이 심심해 하잖아.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야 너 귀머거리야 뭐야? 네 여자한테 돌아가라는 말 안 들려! 여자를 좀 혼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돌아가도록 우리가 도와주지.

나한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서있던 근육질의 사내가 한 걸음 다가왔다. 나도 결단을 내리고는 소리를 질렀다: << 도망가, 아나스타시아! >> 내가 먼저 선방을 날리고 아나스타시아가 도망갈 수 있게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다. 내게 다가온 놈에게 선방을 날렸는데 녀석이 내 손을 낚아채더니 명치에 타격을 가했다. 얼굴에도 주먹다짐을 했다. 난 바위에 나가자빠졌다. 아나스타시아가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쓰러지는 속도로 인해 바위에 머리를 부딪쳤을 것이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숨쉬기가 어려웠다. 나가자빠진 나는 근육질 남자의 발이 내 얼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 놈은 금속제로 테를 두른 반장화를 신고 있었다. << 발로 끝내려는가 보다. >>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온 녀석이 발을 크게 휘둘렀고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듯이 아나스타시아도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 외침 소리 그건 처음엔 보통의 외침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소리는 고막을 찢는 듯했다. 외침이되 소리가 없었고, 그녀의 입술모양으로만 그게 외침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를 포위한 자들이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트리고 손으로 귀를 막는 걸 난 보았다. 세 명은 쪼그려 앉아 경련을 일으켰다. 아나스타시아는 손으로 내 귀를 막고 폐에 공기를 다시 들이마시고는 소리를 질렀다. 초음파 같은 그 소리로 우리한테 다가선 놈들이 모두 쪼그려 않아 발발 떨었다. 놈들은 무슨 영문인지, 칼로 베는 듯한 이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지 못했다. 아나스타시아가 손바닥으로 내 귀를 막아 칼로 베는 듯한 그 소리가 다른 사람한테처럼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통스러웠다. 그때 위쪽 길에서 우리를 향해 급히 뛰어 내려오는 한 무리의 여자들이 보였다. 아나스타시아는 지르던 소리를 멈추고 손을 풀었다. 난 일어나 바위에 앉았다.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 여자들은 무장을 한 상태였다. 병을 든 여자, 자동차 수리공구를 든 여자. 한 여자는 경찰 곤봉을 들고 또 다른 여자는 육중한 촛대를 들고 뛰었다. 맨 앞에는 안카-푸탄카가 샴페인 병을 깨서 병 모가지를 들고 있었다. 이들이 타고 온 지프 옆에 선 <<쥐굴리>>[5] 두 대 쪽에서, 침대에서 바로 뛰쳐나왔는지 시간이 급해서 제대로 옷을 못 챙겨 입고 가운 하나만 걸친 입은 뚱보 아가씨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직업여성의 왕 언니는 마치 비상소집이라도 하듯 직장 동료들을 모았던 것이다.

머리가 다 헝클어진, 필사(必死)의 안카는, 꼴 좋게 바위에 안거나 누워서 이제야 정신을 좀 차리고 있던 놈들 쪽으로 다가와 한 오 미터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두 다리로 서있던 사람은 아나스타시아 혼자였고, 안카가 그녀에게 말했다.

- 친구! 여러 남자들을 데려갔네? 이제 놈들이 좀 싫증나지?

- 한 남자와 좀 얘기를 나누려고 했어. 아나스타시야가 차분히 대답했다.

- 그럼 나머지는 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 왠지 우리를 따라왔어. 몰라, 저들이 원하는 게 뭔지.

- 너는 모를 거야. 난 알지. 이 썩을 놈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안카는 그렇게 답하더니 레나의 친구 놈한테 대고 욕을 퍼부었다. 야 멍청아! 내 친구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얼마나 말해야 알아듣겠어! 피를 빨아먹는 짐승 같은 놈!

- 저건 네 거 아니야. 과거의 낙제생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다 내 거야. 내가 원하는 거 모두 다 내 거야. 알아들어, 애늙은이 같은 놈아. 기둥서방 낯짝으로 다시 한 번 또 내 친구를 노린다면 너와 네 하빠리들의 낯짝을 걸레로 만들어줄 테다. 잘 기억해. 내 영토를 침범하는 기둥서방은 한 명도 그냥 안 뒤, 병신 같은 놈은 못 참아! 사업가들 피 빨아먹는 거로 부족하냐? 우리하고도 무슨 흥정을 하려고?

- 너 완전히 겁대가리 상실했구나. 저 앤 네 게 아냐. 새로 왔다구. 나도 저 애하고 막 말을 해볼 참이었어. 안카, ,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거야. 왜 그래? 여자하고 무슨 관계 있어?

- 내 친구야, 알았어! 너는 니 사디스트하고나 얘기해.

- 너 완전히 정신이 나갔구나. 그러다간 모든 여자들이 니 친구가 되겠다, ?

두목의 목소리는 이제 겁먹은 나직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난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안카와 놈이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놈의 하빠리들이 정신을 차렸고, 그 중 키가 땅딸한 사내 하나가 두목과 나란히 서서는 안카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다른 한 놈은 안카 뒤에 선 직업여성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젊은 여성들의 무리는 깡패들의 총구 아래 놓이게 되었다. 시비 판의 전세는 여자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나도 분명했다: 잠시 후면, 이들의 사기가 꺾일 것이고, 신체적으로 불구가 되고, 거기에다 자유를 잃고, 일거리 조차 잃을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슬픈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어떻게든 사태에 영향을 미치고 싶었다. 나는 옆에 서서 상황을 유심히 주시하고 있던 아나스타시아의 손을 슬쩍 잡아당겼다. 얼른 귀를 막고 빠르게 말했다:

- 소리 질러, 아나스타시아, 빨리 소리 질러!

아나스타시아는 내 손을 내리고 물었다.

- 왜 소리질러야 해, 블라지미르?

- 당신, 안 보야? 이건 시비 판이야. 이 여자들을 다 불구로 만들어버릴 거야. 여자들이 졌어. 여자들은 이제 모두 끝장이야.

- 아니, 모두는 아니야. 그들 중 세 명의 기운은 아직 버티고 있어.

- 권총이 있는데 그 기운이 다 무슨 소용이야. 여자들은 패했다고.

- 아직 지지 않았어, 블라지미르. 그들의 정신이 맞서 싸우는 동안, 누구도 끼어들면 안돼. 제삼자가 개입하면 현 상황을 타개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 내부에 자신에 대한 불신을 불어 넣어. 그러면 살면서 다른 여러 가지 상황을 타개하기가 어려워져.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게 되지.

- 지금만이라도 당신의 철학은 집어치워. 상황이 너무 뻔하다니까 -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나스타시아를 설득하기는 불가능이다. 유감이었다: << 아이구, 내가 그렇게 소리를 지를 수만 있다면>>

자기 수하들의 적극적인 모습에 힘을 얻은 레나의 친구이자 기둥서방은 이제 상황을 완전히 장악한 듯 우월감에 차 말하기 시작했다:

- 내가 뭐래, 안카-푸탄카? 너 완전히 겁대가리 상실했다고 했지. 하지만 이번엔 우리 승이야. 어이, 계집들아! 장난감 내려 놓으시지. 던져놓고 옷도 벗어. 우리가 이제 너희들 모두 순서대로 먹어주지.

안카는 여기저기에 서있거나 권총을 들고 몸을 숨기고 있는 깡패들을 한 번 휘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대답했다:

- 전부는 필요 없고, 나 하나면 족하지 않을까?

- 쓰발 것. 하수인들의 조롱 속에서 이제 두목은 톤을 바꿔 말을 시작했다. 너 혼자로는 안 되겠는걸. 우리가 너희들 모두에게 한 수 가르쳐주지. 이제 너희들 모두 우리한테 봉사해, 알겠냐, 쌍것들아.

- 우리 모두를 상대하려면 거시기 힘이 꽤나 필요할 텐데? 한 명한테라도 충분했으면 좋겠구먼. 호탕한 웃음을 웃고 안카가 대꾸했다.

- 입 닥쳐, 쓰발아. 모두 다 먹어버릴 테다.

- 난 안 믿겨. 한 명도 제대로 건사 못 할 걸.

- 모두 다 아침까지 먹어주지.

- , 젊은이, 네 약속은 이제 신물이 나. 난 그거 못 믿어. 너희들의 그 물건 못 믿는다구.

- 믿게 해주마, 쓰발년. 네 얼굴을 발라줄 테다. 열이 바짝 오른 두목이 쉰 소리를 내고, 쇠 장갑을 끼며 안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냐[6]는 뒤로 한 발 물러서더니 다른 아가씨들한테 소리쳤다:

- 아가씨들, 양 옆으로 비켜서요!

한 무리의 여성들은 뒤로 몇 발짝 물러섰고, 가운 차림의 침울한 뚱보만 땅에 박힌 듯 저쪽 한 자리에 서 있었다. 꺽다리 놈이 안카 쪽으로 한 발 더 다가오자 말수가 적은 뚱보가 문득 맥아리 없이 말했다:

- 아니(Ani), 아니, 왜 그래? 시작해볼까?

- 마쉬카[7], 왜 또? 근질근질해? 안카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럼 시작해봐.

뚱보는 태연히 여성스럽게 가운의 앞깃을 잡아 뜯었다. 단추가 여기저기로 튀어 날랐다. 그러자 젖가슴과 초미니 팬티가 드러났는데, 그것뿐이 아니고또 뚱보의 가운 속에는 소음장치와 야간 가시경이 장착된 칼라쉬니코프 자동소총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는 안전장치를 풀어 개머리판을 어깨와 팔에 밀착시키고는 가늠자를 노려보았다.

- 마샤, 연발로 쏘면 안 되는 거 알지. 여기는 전쟁상황이 아니니까. 한 발 한 발 쏴. 한 발 한 발이 다 돈이야. 안카가 몇 마디 거들었다.

- 알구말구. 뚱보는 가늠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리고는 바로 약 1초의 간격을 두고 다섯 발을 한 발 한 발 쐈다. 그런데 그 사격 솜씨란! 첫 발은 두목의 뒷굽을 떼어냈다. 발에 부상을 입혔는지도 모른다. 두목은 쩔뚝거리며 바다 쪽으로 뛰었다. 다른 네 발은 깡패놈들 한 놈 한 놈 옆에 착지했다. 놈들은 얼른 바위 뒤에 숨었고 가까운데 바위가 없는 놈은 땅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 아니(Ani), 물로 기어들라고 해. 잘못하면 총알이 튀어 저 놈들을 불구로 만들 테니까. 총을 내리지 않고 뚱보가 내뱉었다.

- 젊은 양반들, 다 들었지! 물로 들어가라잖아! 총알이 튕겨 날아다녀도 마쉔카는 책임 못 져. 그렇지 않아도 벌써 물로 기어들기 시작한 근육질의 깡패 도둑놈들한테 안카가 다정히 전했다.

얼마 후 그들은 모두 두목과 함께 바닷물이 허리까지 차는 데까지 들어갔다.

아냐는 아나스타시아한테 다가갔고, 둘은 얼마간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서서 쳐다보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드디어 아냐가 먼저 조용히 뭔가 슬픈 듯이 얘기한다:

- 친구, 여기서 남자 친구와 바람을 쐰다고 했다. 그렇게 해. 멋진 밤이야, 조용하고 따뜻해.

- 그래, 신선한 바람이 시내로 불고 있어. 아나스타시아가 답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냐, 너도 지쳤어. 이제 네 동산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어때?

-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아가씨들이 불쌍해. 그리고 이 놈들을 보면 난 참을 수가 없거든. 그런데 넌 시골에서 왔니?

- 그래.

- 시골 마을 좋지?

- 좋아. 그렇지만 지금 여기서처럼 다른 곳에서 별로 좋지 않으면 항상 평온하지만은 않아.

- 신경 쓰지마. 놀러 와. 난 이제 일하러 가봐야겠다. 이제 안심하고 놀다 가세요.

아냐는 자동차로 향했다. 다른 여자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뚱보는 바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훤히 드러난 무릎에는 기관총이 얹혀있었다. 뚱보 곁을 지나며 아냐가 말했다:

- 마쉔카, 여기서 잠시 쉬어. 곧 차를 보낼께.

- 손님이 기다리는데. 손님을 놔두고 바로 달려온 거야. 돈을 이미 지불했거든.

- 네 손님은 우리가 접대할게. 너 배탈이 났다고 말할게. 아마 샴페인이 가짜인가 보다고 할게.

- 난 보드카 마셨어. 그것도 반 컵만.

- 그럼 뭘 잘못 먹었다 하지 뭐

- 난 아무것도 안 먹었어. 단 거하고 삐라족을 조금 안주로 먹었을 뿐이야.

- 맞아 맞아. 빠라족. 그게 잘못 된 거야. 몇 개나 먹었어?

- 기억 안 나.

- 마샤는 최소 4개 이하는 안 먹어. 그 중 한 아가씨가 말했다. 맞지, 마샤?

- 아마 그럴 거야. 담배나 두고 가. 여기 있으면 심심하니까.

아냐는 뚱보 곁에 담배갑과 라이터를 남겨놓았다. 아가씨들도 자리를 떴다.

- 어이 물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바위에 앉은 이 사람을 두고 가는 거야?

- 어 젊은 양반, 두고 가는 거야. 암 그래야지. 내가 뭐랬어. 하나면 너희들한테 충분할 거라 했지. 네놈들은 모두를 원했지만, 아가씨 한 명이라도 너희들하고라면 심심할 거다.

- 이 놈들아, 네놈들의 짐승 같은 짓거리를 사람들이 알게 되면 알게만 된다면 네놈들이 돈을 준다 해도 너희들하고는 아무도 눕지 않을 거야.

일정 간격을 고르게 두고 깊숙한 총소리 다섯 발이 바위 쪽에서 울렸다. 물에 서 있는 놈들 옆에 각각 한 발씩 떨어져 물이 다섯 번 폴짝폴짝 튀었다가 내려앉았다. 놈들은 바다로 더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아냐가 뒤로 돌아서서 주의를 주었다:

- 야 이 소년들아, 마센카 성질을 건드리지마. 우린 좋은 사람한테는 다정하고 부드럽지. 개처럼 충성스럽다구. 그럴만한 사람한테는 그렇다구. 알았어? 그래, 그럴만한 그러다 문득 낭랑하고 슬픈 목소리로 언덕을 오르며 아냐가 노래를 시작했다:

 

님이 다니던 그 길은,

풀이 무성한 오솔길.

 

절망과 슬픔이 서린 음색의 목소리를 언덕을 기어오르던 다른 젊은 직업여성들도 거들었다:

 

이끼와 풀이 무성한데,

다른 여자와 노니는 님.

어딜 다니시나, 사라지고 없는 님.

아픈 가슴은 울고, 괴롭기만 하네.

 

오솔길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떠났다.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1] Svetlanka: Svetka와 마찬가지로 스베틀라나를 친하게 부르는 이름

[2] 렌카: 레나와 마찬가지로 엘레나를 가깝게 부르는 이름

[3] 노브이 루스키: 신흥 러시아부자. 쉽게 돈을 벌어서 흥청망청 즐기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4] 안카는 안나 Anna의 애칭, 푸탄카는 창녀라는 뜻.

[5] 러시아제의 싸고 서민적인 소형 승용차

[6] 아냐, 안카, 아니 모두 안나 Anna의 별칭

[7] 마쉬카, 마샤, 마쉔카 모두 마리아 Maria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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