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서 빠져 나오기
가끔씩 아침마다 만취의 망각에서 깨어나고픈 욕구가 일었다. 그때마다 난 며칠씩 자란 수염을 깎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아나스타시아를 떠올리며 그녀가 좋은 일을 했으면 했지 나쁜 일은 아닐 거라며 애써 생각을 해보았다. 그녀가 좋은 일을 하였을 것이라 스스로를 자위하려고 애썼으나 일상 생활에서는 자꾸 무자비한 반대주장이 부상하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 아침, 나는 다시 만취의 망각에서 빠져 나오려 애쓰려는 참이었는데, 친한 친구가 내 월세 아파트의 초인종을 눌렀다. 이른 아침인지라 나는 아직 수염도 깍지 못한 터였다. 거품을 듬뿍 바른 얼굴로 문을 열었다.
-심각히 나눌 얘기가 있어 왔네. 하던 일 계속하며 내가 하는 말을 듣게.
내가 면도를 하는 동안, 그는 이제서야 책을 완독했다고 말했다. 책이 자기의 마음을 동(動)하게 했으며 많은 점에서 아나스타시아와 동의한다고 했다. 그녀의 논리가 철석 같다 했다. 그런데 블라지슬라브를 더욱 동하게 한 건 다른 데에 있었다.
- 그러니까, 그녀와 만난 이후 자네는 가족과 연을 끊고 사업을 날리고 또 사업을 더 이상 해볼 생각이 없단 말이지?
- 그렇다네.
- 그녀의 말대로 생각이 더 순수한 기업가연합을 조직하는데 힘을 쏟았고? 다음 권 책을 쓰고 있고?
- 지금은 쓰고 있지 않아. 뭘 좀 알아야 할 게 있어서.
- 내 말이 그 말이야. 당장 밝혀야 해. 그 외톨이와 만나고 5년이 흘렀는데 자네가 이룬 게 뭔가, 뭘 했는가?
- 뭐라니? 카프카즈에서는 사람들이 고인돌을 전과 달리 대한다네. 그간 고인돌에 대한 학술서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고인돌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 고인돌을 무너트리고 돌을 다 가져가는데 예사였어. 아나스타시아의 얘기는 바로 효과를 발휘했다네. <<우정>>이란 휴양소 사람들은 내 책을 읽고 직원들이 바로 다 모여서 고인돌에 꽃을 바치러 갔었지. 다른 곳에서도 사람들이 조상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기고 있어. 깊이 생각을…
- 스톱, 난 자네가 한 말에 완전 동의하네. 그녀가 한 말은 분명 영향을 발휘하고 있어. 지금 자네가 한 말이 그 증거가 되지. 그건 또한 다른 것의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말일세. 그녀가 자네를 홀린 거야. 자네는 지금 자네가 아니야.
- 왜 그렇게 생각하지?
- 그거야 뻔하지. 자네는 사업가야. 페레스트로이카 초창기에 사업자금 없이도 큰 기업을 일으킨 자네 아닌가. 자네는 시베리아 기업인협회 회장이라네. 그런데 갑자기 사업을 집어 던지고 손수 빨래하고 식사 준비하고… 이건 이전의 자네가 아니야.
- 블라지슬라브,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어. 하지만 난 아나스타시아가 한 얘기에 감동했어. 그녀의 꿈은 아름다워: << 사람들이 검은 힘의 토막 시간을 건너게 해준다 >>는 것이지. 그녀는 그걸 믿어. 내게 책을 쓰라고 청하기에 난 약속을 했어. 그녀는 홀홀 단신(單身) 아닌가, 기다리고 꿈을 꾸지. 내 책을 자기의 꿈과 어떻게 연계하려나 보네. 자네도 아나스타시아가 한 말의 힘을 대단하다고 인정하는 거지?
- 바로 그 점이야. 그건 바로 그녀의 간섭을 분명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인 것이야. 자네 스스로 생각해보게. 무명의 저자, 사업가가 갑자기 책을 써낸다네. 그것도 주제가 뭔가? 인류의 역사가 주제란 말일세. 우주, 우주 이성, 보육이 주제야. 그녀는 현실의 삶에서 사람들에,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 긍정적인 영향이라면 괜찮지.
-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자네가 어떻게 갑자기 글을 쓰는 능력이 생겼는지 생각 안 해 봤나?
- 아나스타시아가 가르쳐줬어.
- 어떻게 그렇게 했지?
- 나무 가지를 집어서 땅바닥에 글자를 그렸지. 알파벳 모두. 그러면서 말하는 거야: <<글자들이야, 당신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당신 세상의 책 모두가 이 글자들로 쓰였지. 좋은 책 나쁜 책 모두 다. 이 서른 세 글자가 어떻게 어떤 순서로 배열되는가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는 거야. 그걸 배열하는 방법은 두 가지야. >>
- 그렇게 단순하다고? 33 글자를 일정 순서에 따라 배열만 하면 된다고? 자네가 그걸 배열해 놓으면,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고인돌에 꽃을 바치러 산에 오른다고? 그건 믿기 어려워. 보통의 상식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네. 그건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야. 모르긴 해도, 그녀가 자네를 홀렸거나 프로그램을 바꿨거나 최면을 걸었을 거야. 뭐든 조치를 취해야겠네.
- 내가 그녀를 요술쟁이라 부르면, 또는 <<신비>>, <<환상>>, <<믿기 어려워>> 등등의 단어를 쓰면 그녀는 낙심이 크다네. 자신은 보통 사람이고 여자이며 정보가 더 많을 뿐이라고 증거하려 들지. 많다는 건 우리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그녀의 말에 의하면, 태초의 사람들은 그런 능력을 가졌었는데… 그라고 나중에… 그녀는 내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네.
- 자네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
- 타이가에 아나스타시아와 함께 있지. 우리 과기 세상의 여건에서는 어린애를 보육하여 진정한 사람으로 키우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네. 인조한 물건들을 어린 아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진리에서 멀게 한다네. 어린애가 진리를 깨달은 후에야 이런 물건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네.
- 자네는 왜 타이가로 가지 않는가? 왜 그녀와 함께하지 않지? 아들 보육을 돕지 않냐고?
- 보통 사람은 거기서 살 수 없다네. 그녀는 불을 사용하지도 않아. 식사법도 독특하지. 게다가… 아직은 내가 아들과 어울릴 수 없다고 한다네.
- 그러니까, 우리 보통 세상에서 그녀는 살고 싶지 않다 이 말이지? 자네도 거기서 살 수 없고. 그럼 이거 어찌되는 건가? 생각해 봤나? 가족도 없이, 혼자.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 아직은 괜찮아. 벌써 이년 째 한 번도 앓아 누운 적이 없다네. 그녀가 내 병을 고쳤어.
- 그럼 자네는 이제 영원히 병에 안 걸린다는 말인가?
- 병이야 걸리겠지. 사람들한테 어둡고 치명적인 것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온갖 병이 돌아오려 한다고 아나스타시아는 말했어. 나도 당연히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 보듯 담배도 피우지. 술도 홀짝거리기 시작했고. 하지만 이게 중요한 건 아니야. 아나스타시아 말로는, 밝은 생각과 사고가 주로 온갖 질병과 맞서 싸우는 것인데 그게 적다는 거야.
- 그거 보게.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자네한테도 미래는 없는 것이야. 난 자네에게 사업 제안을 하나 가져왔다네. 내가 자네를 최면에서, 홀린 것에서 풀어줄 테니, 자네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내 회사 일을 좀 도와주게, 자문을 해주게. 자네는 인맥도 있고 사업 경험과 재능도 있잖은가?
- 블라지슬라브, 난 자네를 도울 수 없어. 난 지금 사업 생각이 없어, 생각은 다른 데 가 있다네.
- 지금에야 당연히 생각이 없겠지. 우선, 정상으로 돌아오게. 자네는 나만 믿으면 돼. 친구로서 부탁이네. 나중에 내게 고맙다고 할 걸세. 결국에는 정상으로 돌아와서 자네한테 있었던 일을 스스로 판단할 날이 올 걸세.
- 정상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 그거야 간단하지. 보통의 자연스러운 삶을 며칠 만이라도 살아 보고 아가씨들과 놀아봄세. 그리고 나서 자네의 최근 몇 년을 뒤돌아 보게. 그래도 그게 마음에 든다면 지금처럼 계속 하던 일 하며 살게. 정상상태에서 자네가 최면에 걸렸더란 것을 알게 되면 다시 사업을 시작해보세. 자네한테도 좋고, 내게도 도움을 주게.
- 난 창녀와 할 수 없다네…
- 누가 창녀하고 하래… 스스로 원하는 여자를 구하면 되지. 파티를 여는 거야. 음악과, 친구들. 레스토랑에 갈 수도 있고, 야외라도 좋지. 내가 다 알아서 함세. 자네 일은 따라주는 것뿐이야.
- 난 나 자신을 알고 싶다네. 생각을 좀 해야 해.
- 그 생각 좀 집어 치우고 내 제안을 실험이라 생각하고 받아주게나. 친구로서 부탁이네. 내게 딱 1주일만 주게. 그리고 나중에 생각하게나.
- 알았네. 한 번 해보세…
다음날 우리는 블라지슬라브가 “괜찮은 아가씨들”이라 표현한, 오랫동안 알고 지낸다는 사람이 살고 있는 이웃 마을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