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당신의 소망

haanbs 2007. 10. 10. 22:58

당신의 소망

 

아나스타시아와 함께 내가 사는 아파트에 도달한 시각은 밤 열두 시경이었다. 자물쇠 구멍에 열쇠를 끼우는데 일도 많았던 오늘 하루 그 동안 쌓였던 피로가 몰려왔다. 침대가 눈에 들어오자 너무 졸리다고 아나스타시아에게 말했다. 그리곤 곧장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나오니 아나스타시아가 전한다.

- 당신 잠자리를 봐놨어. 나는 발코니에 누울 게.

<< 이 조립식 아파트가 너무 더운가 보지. >> 난 이렇게 생각하고 아나스타시아가 발코니에 자기 잠자리를 어떻게 봤는지 보러 갔다. 발코니 바닥에는 좁다란 카펫이 깔려있고 그 위에는 벽지를 바를 때 속에 대고 바르는, 집주인이 준비해 놓은 하얀 종이와 머리맡에는 작은 가지가 놓여있다.

- 딱딱하고 추워서 여기서 잘 수 있겠어, 아나스타시아? 이불이라도 가져가.

- 걱정 마, 블라지미르, 여기가 좋아. 공기는 신선하고 별들이 보여. , , 오늘 별이 참 밝다. 다정하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데. 춥지 않아. 블라지미르, 당신 이제 가서 누워. 내가 당신 침대 가에 잠시만 앉아있을 게. 잠들면 나도 누울 거야.

난 아나스타시아가 본 잠자리에 누워서 생각했다. 곧바로 잠들 거라고.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 사람이, 모든 사람들이 어떤 우연한 사건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라는 생각이, 그런 의식이 내 속을 마구 태우고 편안하게 하지 않았다. 이런 우연을 늘어놓는 자들에 대해서, 아나스타시아에 대해서 증오심이 점점 불어났다. 아나스타시아도 최소한 나의 삶에 있어서는 이런 우연들을 늘어놓는데 분명 일조한다는 생각에 그녀에 대해서도 증오심이 발동한 것이다.

- 블라지미르, 당신 무슨 걱정 있어?

아나스타시아가 조용히 물었다. 나는 약간 몸을 일으켜 앉았다.

-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난 당신을 믿었어 난 믿고 싶었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어. 사람이 가문의 땅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생태마을을 굳게 믿었어. 자식을 행복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고 아이들이 다니는 좋은 학교가 있다고 했지.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식이라고 당신을 믿었어. << 사람은 지음의 꼭대기야. >>라고 당신은 말했지, 맞아?

- 그래, 블라지미르. 내가 당신한테 그걸 말해주었어.

- 말하다마다. 모두에 대해서 확신 있게 증거했지. 나는 당신을 믿기만 한 게 아니야. 행동을, 생태마을을 조직하기 시작했어. 공식문서를 여러 기관에 제출했어. 아나스타시아 문화창작재단에서는 희망자들로부터 신청을 받고 있어. 동산(), 다양한 수종의 배치 설계 등등에 대한 설계 제작을 이미 주문했어. 당신을 믿는 거로 끝이면 대수아이지만 난 기쁨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어. 당신은 알고 있었어! 당신은 내가 행동할 거란 걸 알고 있었어!

- 그래, 블라지미르, 난 알고 있었어. 당신은 사업가라는 걸. 당신은 언제든 실제 행동하고 꿈을 실현할 용의(用意)가 있어

- 항상 용의가 있다? 그거 간단하네. 그래. 선견지명까지야 필요 없지. 사업가라면 누구든 무언가를 믿으면 행동을 개시할 거야. 나도 바보 멍청이처럼 시작을 한 거고.

나는 더 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가서 쪽창을 열었다. 방 안이 그런지 내 속이 그런지 너무 더웠다.

- 왜 당신의 행위가 멍청한 짓이라 생각했지, 블라지미르? 아나스타시아가 담담하게 물었다.

그녀의 침착함, 위장술이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더욱 분노케 만들었던 것 같다.

- 말도 참 차분이 한다. 차분해! 정작, 사람은 누군가의 손아귀에 든 일개 꼭두각시라는 걸 모르는 듯이 얘기하네. 여러 상황을 통해 사람을 조종하지. 무언가의 힘이 사람을 조종하는 건 식은 죽 먹기야. 하고 싶으면 인류의 절반을 전쟁에 몰아넣을 수도 있어. 몰아넣고 사람이 서로 죽이고 죽는 걸 위에선지 옆에선지 구경한다고. 사람들한테 종교를 슬쩍 밀어 넣고 다양한 신앙의 사람들이 자기 신앙을 위해 싸우는 걸 관찰하지. 사람하고 장난을 치기도 해. 난 그걸 확인했어. 분석 능력이 뛰어난 똑똑한 사람들 덕에 난 확인할 수 있었어.

- 사람이 무엇인가 힘의 손아귀에 놓인 꼭두각시라고 똑똑한 사람들이 어떻게 당신에게 확신을 주었지?

- 한 사람이 보고하는 걸 들었어. 나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 책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똑똑한 사람들이 주목을 한 거야. 당신과 내가 관심의 대상이었지. 내가 사이프러스에 있을 때 매일매일의 나의 일정을 추적했더라고. 그때 난 네 번째 책을 쓰고 있었어. 모든 걸 자세히 기록한 다음 분석을 했어. 하지만 난 그들이 내 뒤를 밟은 게 화가 안 나, 알아?  내 눈이 뜨게 해주어서 오히려 그들에게 고마울 지경이야.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걸 보여줬어. 우연이란 건 없어, 조작을 하는 거지. 직접 체험해봐서 난 이제 확신해.

- 어떤 체험, 당신이 실제 실험을 해봤어, 블라지미르?

- 내가 한 게 아니라 날 가지고 논 거야. 내가 사이프러스에 있을 때 민물고기 얘기를 했거든. 그랬더니 그 고기가 나타났어. 잣나무 얘길 하니 잣나무가 나타났고. 밤에 교회를 가고 싶었는데 교회도 나타났어. 밤인데도 교회 문이 열렸있었어. 그 외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 나는 그냥 그들이 원하는 걸 적으면 그만이었을 거야.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아프로디테 여신의 손녀가 나타난 거야. 사람들이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 노래를 부르며 짜증나게 굴길래, 내가 사이프러스에서 몇몇 사람한테 아프로디테의 손녀를 만나고 싶다고 했거든. 아프로디테의 목욕탕을 선전하는 현수막이 어딜 가도 있고, 그 얘길 하는 자부심이 대단하더라고. 아무튼, 난 말했어, 아프로디테 여신의 손녀와 만날 거라고. 그랬더니 며칠 후 불처럼 타는 듯한 눈을 가진 한 아가씨가 나타난 거야. 아프로디테 여신이 손녀를 보냈고, 이 아가씨를 통해서 기적이 행해졌으며, 이 아가씨 스스로도 모습이 확연히 변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모든 상황이 맞게 돌아갔어. 이렇도록 상황을 하나 하나 연이어 연출한 게 누구지? 누구냐고? 난 아무것도 조작하지 않았어. 어떤 한 사건이 우연히 일어났다면 몰라도 그런데 이건 모두가 모두가 우연일 수는 없잖아. 이건 필연이야. 학자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어. 나는 그 결론이 타당하다고 생각해. 당신도 이제 부정할 수 없을 거야.

- 나도 일어난 사건들의 필연성을 부정하지 않아, 블라지미르. 아나스타시아가 순순히 수긍했다.

내 속의 모든 것이 싸늘해졌다. 아나스타시아의 이 마지막 말 한마디에 전에 없던 어떤 반감이 순간적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기대했다. 미약하게나마, 나는 그녀가 사람이란 존재가, 아니 온 인류가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라는 나의 확신을 깨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나스타시아는 그러지 않았다. 하기야, 그리 명명백백한 걸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달빛만 비추는 방, 창가에 서서, 나는 모든 것에 냉담하게 별들만 바라보았다.

저기 어디에, 저 별들 중 어디 하나에, 우리를 조종하는, 우리를 놀리는 자들이 살겠지. 그들은 살아! 그런데 우리가 존재함을 삶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누군가의 의지에 공손히 따르는 노리개는 스스로 살 수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사는 게 아니야. 우리는 <<아무리 해 봤자>> 안돼.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아나스타시아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게 어떤 감정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별로 중요할 게 없는 무슨 소리로 들렸다.

- 블라지미르, 당신 그리고 당신에게 보고자의 음성이 든 오디오카세트를 보낸 사람들은 옳게 정의를 내렸어: 정말로, 시간을 넘나들며 여러 사건들을 하나의 통합된 고리로 연결하거나, 당신의 경우에서처럼,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여러 상황을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을 수 있는 어떤 에너지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야. 순전히 우연이란 없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우연도 프로그램 되는 거야. 각각의 사람 모두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프로그램 되는 거야. 사이프러스에서 당신한테 일어난 일 모두는 연구분석자나 당신한테 좋은 사례가 될 거야. 그것은 물론 사전에 프로그램 된 것이고 추후 현실로 나타난 거야. 블라지미르, 내게 말해줘, 당신한테 일어난 우연들을 프로그램 한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  

 

 

 

 

 

 

- 그가 어디에 있던 무슨 상관이야? 관심 없어. 화성에 있든 달에 있든 고생을 하든 세월 좋든.

- 그는 이 방에 있어, 블라지미르.

- 그럼, 그게 당신이야? 설사 그렇다 해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 전혀 놀랍지도 화나지도 않아. 나완 아무 상관 없어. 우리는 조종 되는 존재야, 거기에 모든 인간의 비극이 있지.

- 나는 결코 당신한테 일어난 우연의 수석 프로그래머가 아니야, 블라지미르. 나는 아주 조금 영향을 미칠 수 있어.

- 그럼 누가 수석이야? 방안 우리 둘이 전부야. 아니면 보이지 않는 세 번째 프로그래머가 있나?

- 블라지미르, 그 프로그래머는 바로 당신 속에 있어. 그건 당신의 소망이야.

- 그게 무슨 소리야?

- 오직 사람의 소망, 그리고 열의만이 이런 저런 행동 프로그램을 작동하게 할 수 있어. 그게 조물주의 법이야. 그 어느 누구도, 우주의 어떤 에너지라도 결코 이 법을 어길 수는 없어. 왜냐하면 사람은 우주의 모든 에너지들을 호령하는 자이니까! 사람이 그래!

- 하지만 난 사이프러스에서 아무것도 작동시키지 않았어, 아나스타시아. 모든 게 저절로 나의 개입 없이 스스로 일어났다고.

- 사소하지만 더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결국에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 일어나게 하는 그런 사건들은 당신의 개입 없이 일어났어. 하지만 주요 사건들에 앞서 당신의 소원이 선행했던 거야. 아프로디테 여신의 손녀와 만나고 싶어한 건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지? 당신은 증인이 있는 곳에서도 이 소망을 피력했고 그것도 여러 번이나 말했잖아.

- 그래, 그랬지

- 그걸 당신이 기억한다면, 주인님의 소원을 수행한 하인을 어찌 권력자라 할 수 있고, 주인을 어찌 그들의 손아귀에 든 꼭두각시라 할 수 있지?

- 그렇다면 바보스러운 일이지. 그거 참 재미있게 돌아가네. 세상에 소망이 그럼 왜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지는 않는 거지?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거 저런 거를 원하지만 그게 이루어지지는 않거든.

- 목적의 중요도에 많은 게 달려있어. 그 소망이 밝은 힘 또는 어두운 힘과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그 소망의 힘에 달려있어. 목적이 중요하고 밝을수록 더 많은 밝은 힘이 그 일의 성취에 개입하게 돼. 그 목적을 이루도록.

- 그런데 목적이 어두운 것이라면? 예를 들어, 술을 진탕 마신다거나, 싸우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거라면?

- 그 일은 어두운 힘이 담당하지. 사람은 자기의 소망으로 그들이 행동하게 만드는 거야. 여하간, 가장 우선이며 주는 당신이 보듯 사람의 소망이야! 당신의 소망, 블라지미르.

아나스타시아가 한 말을 곰곰이 새겨보니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아주 기분 좋은 달빛이 방을 한 가득 채우고, 하늘의 별은 차갑지 않은 따뜻한 빛을 내리 비추는 것 같았다. 침대 가에 앉은 아나스타시아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난 그녀에게 말했다:

- 아나스타시아, 이거 알아? 솔직히 얘기하면, 거기 사이프러스에서 처음에 난 바람을 피울 뻔했어. 처음에는 도무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거든. 러시아 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일도 안 되지. 온통 먹고 놀자 판이야. 왜 내가 여기로 오게 했지? 창녀들하고 놀라고 그러는 거 아냐? 이렇게 생각했어. 거기 행실이 가벼운 여자가 많아. 러시아에서, 불가리아에서 온 여자들.

- 그것 봐, 블라지미르, 당신이 원하니까 바로 나타나잖아. 보드카를 실컷 마셨고, 여자들과 만날 약속도 했지. 불가리아 여자하고도 러시아 여자하고도. 그런데 그보다 전에 당신은 아프로디테 손녀와 만나고 싶어했어. 그 소원이 더 강했고 그래서 그녀가 나타나서 당신을 몹쓸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도운 거야.

- 그래, 도와줬어. 그런데 당신이 불가리아 여자는 어떻게 알아?

- 걱정했거든, 블라지미르.

-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보다는 말이야, 그 아가씨, 엘레나 화제에바 말이야, 그 여자는 사실 아프로디테 여신의 손녀가 아니잖아. 그 여자는 러시아 사람이야. 여행사를 대표해서 사이프러스에서 그냥 일할 뿐이야. 난 아프로디테 손녀 얘길 했어. 그러니까, 그 밝은 힘이란 게 말이야, 진짜 아프로디테 손녀를 보여주기에는 힘이 부족했나 보지?

- 절대 그렇지 않아. 보여주었어. 아프로디테 여신은 이제 에너지야. 그녀는 일정 기간 어떤 사람의 에너지와도 접촉할 수 있어. 합당한 뜻이 있으면 그래. 엘레나 화제에바가 당신 곁에 있을 때, 그녀에겐 두 가지 에너지가 있었어. 그 며칠간 그녀는 능력이 많았어. 많은 걸 해냈고 당신을 도왔어.

- 그랬지. 난 그녀에게 감사해.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감사해.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없는 어떤 힘의 손아귀에 든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때의 모든 근심걱정과 불쾌한 감정이 다 사라져버렸다. 아나스타시아와 얘기를 하고 나니 확신과 평온이 찾아 들었다. 달빛 아래 침대 가에 앉아 두 손을 무릎에 다소곳하게 모으고 있는 아나스타시아를 얼마간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나도 어떻게 그리 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데 문득 이렇게 말했다.

- 난 이제 알겠어, 당신이 누구인지, 아나스타시아. 당신은 위대한 여신이야. 난 이렇게 말하고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절망과 고통의 외침이 아나스타시아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나에게서 약간 떨어지더니 벽에 기대어 마치 기도라도 하듯이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 블라지미르, 제발, 무릎 펴고 일어나. 당신은 내게 절을 하면 안돼. , 하느님, 하느님.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나요. 내가 서둘렀어요. 당신의 아들이 못 알아듣게 설명해서 나를 용서하세요. 블라지미르, 하느님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동등해. 서로 서로를 숭배하면 안돼. 난 그냥 여자야, 난 사람이야!

- 아나스타시아, 당신은 다른 사람들하고 많이 달라. 당신이 보통 사람이라면 그럼 우리는, 나는 누구지?

- 당신도 사람이야. 다만, 분주한 일생을 살면서, 아직 자신의 소명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야.  

- 모세, 예수 그리스도, 모하메드, 라마[1], 붓다. 이들은 누구지? 당신은 이들을 어떻게 생각해?

- 당신은 나의 오랜 형제들 이름을 불렀어, 블라지미르. 난 이들의 행위를 판단할 자격이 없어.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어: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지상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어.

- 그럴 리가 없어. 이들 모두에게는 지금까지도 수백만의 숭배자들이 있어.

- 숭배가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아. 숭배는 오직 사람한테만 있는 생각의 힘을 앗아갈 뿐이야. 내 형제들의 에그레고르[2]는 위대해. 지난 수백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힘을 덜어서 거기에 보탰어. 사냥의 시대에 내 형제들의 행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어. 그들이 왜 자기의 에그레고르를 그렇게 열심히 키웠는지, 왜 에너지를 수천 년간 모았는지 나도 몰랐어. 지금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어느 누구도 그들의 비밀을 풀지 못했어. 형제들은 이제 결단을 내린 거야: 그 동안 축적된 것을 하나로 모아서 지금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에너지를 나누어 주기로. 지구에 새 천 년이 도래하면 깨달음 덕에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 - ()들이 온 지구에 퍼져 살게 될 거야.

블라지미르, 제발 일어나! 아버지라면 누구나 자기 아들이 노예가 되고 무릎을 꿇는 건 고통이야. 검은 것은 언제고 사람의 의미를 비하하려 들지. 블라지미르, 일어서, 자신을 배반하지마. 나에게서 멀어지지마.

아나스타시아는 감격이 격했다.  나는 그녀의 청을 받들어 무릎을 펴고 일어서서 말했다.

- 난 멀어지지 않았어. 오히려 이젠 당신을 좀 알 것 같다고. 그런데 숭배가 사랑에 방해가 된다는 건 동의할 수 없어. 신앙인들은 그 반대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해 그래서 나도 여신 앞에서 그러듯이 당신 앞에서 절을 한 거야. 그런데 당신은 왠지 기겁을 하고 감정이 격해지지 시작했어.

- 우리가 만난 지 벌써 5년이 넘어, 블라지미르.  우리 아들이 잉태된 그날 밤으로부터 적지 않은 날이 지났어. 그런데 그 이후 당신은 나를 만지려고도, 당신이 다른 여자들에게 선사한 그 시선으로 나를 보고자 하지도 않았어. 단 한 번도 그런 소망이 일지 않았어. 몰이해, 게다가 지금은 숭배까지 사랑이 열리지 못하게 하는 거야. 숭배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 그건, 왠지 당신이 여자 같지 않아서 그래, 아나스타시아. 당신은 무슨 정보 덩어리 같아.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당신이 하는 말을 바로는 못 알아들어. 예를 들면 << 자신을 배반하지마. >> 이게 무슨 뜻이지?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했어?

- 당신은 러시아 대통령 앞으로 편지를 썼어, 블라지미르. 이때 자신을 의심한 거야. 죽다가 겨우 살아났어. 당신은 짓기를 중단했어. 다른 사람한테 문제를 떠넘긴 거야. 그것도 단 한 명의 대통령한테.

- 그건 우리나라에선 그 혼자만이 뭔가를 해도 할 수 있기 때문이야.

- 혼자는 못해. 대중의 의지가 있어야 해. 게다가, 왜 한 대통령에게만 호소했지?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카자흐스탄에도 대통령이 있는데.

- 당신은 러시아에 대해서만 말했잖아. 러시아는 나의 조국이야.

- 하지만 당신의 주민등록에 보면 당신은 벨로루시 사람이야.

- 그래, 벨로루시 출신이지. 우리 아버지는 벨로루시 사람이었으니까.

- 어린 시절은 전부 우크라이나에서 보냈지

- 그래, 그랬지. 그때가 내 어린 시절에서 최고로 좋았어. 짚으로 지붕을 해 덮은 하얀 시골집, 이웃 동무들과 미꾸라지를 잡던 통나무 깔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보는 앞에서 한 번도 다투거나 내게 벌을 주지 않았어.

- 그래, 그렇고말고, 블라지미르. 또 생각해봐. 당신이 할아버지와 함께 작은 묘목을 심었던 때를

- 그래, 기억나 할머니는 양동이로 나무에 물을 주셨지.

- 당신이 태어난 그 마을, 우크라이나 쿠즈드니치에는 지금까지 그 동산이 보존되어 있어. 나이를 먹어 껍질이 꺼칠꺼칠한 나무들이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 그럼 나의 조국은 도대체 어디야, 아나스타시아?

- 당신 속에 있어.

- 내 속에?

- 당신 속에! 당신의 마음이 끌리는 지구 어디에서라도 그걸 물화(物化)해봐, 영원히.

-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걸. 아직까지는 내가 여기 저기에 흩어진 느낌이야.

- 블라지미르, 당신 힘들었어. 어제 감정을 많이 소비했어. 누워, 잠들어. 자고 아침이 되면 다시 힘이 솟을 거야.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 거야

나는 침대에 누웠다. 아나스타시아가 내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난 이제 깊은 잠에 들 것이다. 아나스타시아는 깊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할 줄 안다. 좋은 아침을 맞을 수 있도록. 잠에 빠지기 전 난 얼른 이렇게 말했다.

- 아나스타시아,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멋진 미래를 볼 수 있게 해줘.

- 알았어, 잠들어, 블라지미르. 이제 보게 될 거야.

아나스타시아는 조용한 목소리로 노랫말이 없는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른하고 편안한 조국의 꿈에 빠지기 전 생각했다. <<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위해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니, 정말 좋다 >>. 그리곤 언제 잠들었는지 잠들었다.



[1] Rama: 힌두교에서 비슈누(Vishnu)의 지상의 화신, 신이며 왕이다.

[2] Egregor: 한군데 집단적으로 모인 정신의 응집체 혹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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