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참담(慘憺)

haanbs 2007. 10. 6. 11:57

 

참담(慘憺)

 

나는 카세트에서 흘러 나오는 사람의 목소리를 두 차례 연속해서 들었다. 낯선 목소리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가 내린 결론은 내게 너무도 충격이어서 난  책 쓰기를 계속할 수 없었다. 삶이란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였다.

사람을 중요히 여기고 사람은 누구나 다 하느님의 자식이며 누구든지 다 이 땅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아나스타시아의 철학이 난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시아는 사람이 자기의 소명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난 아나스타시아를 믿었다. 우리가 생활양식을 새로이 하고, 새 마을을 지으면, 오늘 우리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카세트에서 들리는 내용을 듣고 나니 모든 믿음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카세트에서 보고자가 발표한 대로, 내게 일어났던 우연의 사건들, 또한 그 사건들이 질서정연한 고리를 이루며 일어났다는 그의 지적은 사실이었다. 정말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고, 사실은 그보다 더 많았다. 나는 알고 있지만 그가 확인하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사실이 그랬고, 나는 누군가의 손아귀에 놓인 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게 아나스타시아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힘이나 에너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사람인 나는 실제 아무것도 아니며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존재한다고 해 봤자, 그건 누군가가 일련의 우연으로 쉽게 조종 가능한 나의 고기덩어리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조종되는 것이 나뿐이랴?! 위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 다른 사람들도 조종될 수 있고, 온 인류가 조종될 수 있고, 우리 인류는 우리 지혜로는 볼 수 없고 인식이 불가능한 누군가의 장난감에 불과하지 않느냐 말이다.

나는 누군가의 장난감이 되고 싶지 않지만, 보고자가 도출한 결론은 그걸 여실이 증거하고 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조종당하고 있어.

이 결론은 내가 잘 아는 사실들로 증명이 되었고 전혀 논박할 거리가 없이 명백하다.

사이프러스에서 내게 있었던 일들을 나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그건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멋진 우연들을 연속으로 일어나게 했다면, 이 보이지 않는 누구는 심통이 나면 다른 사람 누구에게 좋은 우연의 연속이 아닌 그와 다른 사건을 연속 지어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사람은 장난감에 다름 아니다. 온 인류는? 무언가의 어떤 힘이 어린아이들이 장난감 병정 놀이를 하듯 온 인류를 갖고 논다는 것을 나는 왜 전에 몰랐을까?

타이가에서 아나스타시가 하느님과 창조에 대해 이야기 할 땐 내 앞을 가리고 있던 어떤 장막이 걷히는 것 같았다. 

일생 처음으로, 난 하느님이 구름을 타고 앉아 있는 어떤 무형의 존재나 노인이 아니라 감정과 연민, 꿈과 창조의 능력을 지닌 인격체로 느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내게 든 느낌은, 그 동안 어디에서 듣고 읽은 것보다 더 밝고 이해하기 쉽다는 거였다. 그리고 또, 그녀가 이야기 할 때 내 가슴은 훈훈했고 외로움도 덜했다. 그러니 그 분은 존재한다! 그는 이해될 수 있고 행동하는 분이시다. 그는 지혜로우며 선하다. 그 물증으로 주위에 그의 조물들이 있다: 잣나무, , , 짐승들. 타이가에서는, 아나스타시아의 타이가 빈터에서는 이들이 모두 다 더 착하고 사납지 않다. 우리는 그 분의 조물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것이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듯하며, 그 외의 다른 무엇으로 그 분을 판단하고 평가하려 한다. 신비한 가르침이 마치 있다는 듯이.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을 전전(轉轉)하며 신비한 장소를 구하고 스승 또는 가르침을 찾아 헤맨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논리라곤 한 올도 찾을 수 없다. 하느님을 우리 부모라 생각한다면, 어찌 그가 자기 자식 모르게 무언가 좋은 것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나? 그 분은 자기 자식, 사람들 모르게 감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숨긴 게 없다. 그 분은 항상 곁에 계시려고 한다. 그에 대항하는 힘이란 무엇일까? 어떤 힘이 우리를 그토록 바보로 만들었길래, 우리는 그의 너무도 훌륭한 지구를, 온 지구를 우리 삶의 양식으로 인하여 대재앙의 위험에 처하게 했을까?

밤이 내리면 우리가 사는 고층 아파트 창에는 불이 들어온다. 그 창 안에서는 누군가의 삶이 이어진다. 이 세상에 진실로 행복한 삶이 얼마나 될까? 도덕과 사랑 그리고 문화를 얘기하며 근사해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실상은? 실제로는, 멀쩡해 보이는 남자 중 최소한 절반은 남들 몰래 바람을 피운다. 겉에서 보기에는 유복해 보이는 자기 가족 몰래 숨어서 성을 즐긴다.

러시아에서 가장 돈이 되는 사업이 뭔가? 보드카와 담배다. 이걸 독점판매 해서 나라는 등이 따습다. 마시는 건 누구고? 담장 밑과 지하도에 널브러져 있는 술주정뱅이인가? 물론, 이들도 마신다. 하지만 이들에겐 수백 개의 술 공장이 강물처럼 많은 술을 쏟아내게 할 만한 돈은 없다. 주 소비자는 외모가 멀쩡하고 존경스러운 사람들이다.

우리 세상에는 엄청난 규모의 경찰과 탐정 및 경호 서비스 회사들이 있다. 그건 무엇 때문인가? 거렁뱅이나 싸움꾼들을 넝마처럼 주워 담으려고? 천만에! 그런 정도의 내무부 규모라면 하루 만에라도 몽땅 잡아 쳐 넣을 수 있다. 싸움의 상대는 이들이 아니다. 상대는 외모가 멀쩡한 사람들이다.

주목해보시라. 거대 규모의 특수부대가 있어도 이들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그 의미는, 그들에 맞서는 대규모 군이 있다는 말 아닐까? 다시 말해서 전쟁이 쉼 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이 전투행위의 경계선 상에 있는 것이다. 이 두 군대에 자금을 지원하는 건 우리들인 것이다. 한편이 보유 장비를 개선하는데 우리가 도움을 주면, 맞수도 장비를 현대화 하는 돈을 우리에게서 가져간다. 돈 주머니는 하나 우리의 노동뿐이다. 전쟁은 첨단무기로 싸운다. 한 해, 이태가 아니라 수천 년간 지속되고 있다. 전쟁의 시작이 어디며 누가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이 전투행위의 한 가운데 있으며 누구도 중립에 설 수 없다. 우리 모두가 개입되어 있다. 우리 모두는 그칠 줄 모르는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직접 전투행위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의식적으로 혹은 자기도 모르게 전쟁에 자금을 지원하고, 또 누구는 무기를 생산한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우아한 가면을 쓰고 다닌다. 과학을 말하고 기술, 문화를 말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우리의 이성적인 문명은 똑똑이 모습을 하고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말한다. 그런데 너 똑똑한 문명, 왜 너희 수도꼭지에선 역한 냄새가 나는 물이 쏟아지지? 먹을 물을 사먹게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냈지? 왜 이 물은 점점 비싸지지?

우리는 점잖은 척, 가면을 벗고 싶지 않다. 왜 그렇지? 왜 해가 갈수록 사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지? 왜 우리는 뒤로 돌아서지 못하고 고약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려는 거지? 들어가면서도 그걸 자인하려 들지 않는다.

왜 아무도 그걸 막으려는 사람은 없을까?

우리에겐 여러 종교가 있다. 그 많은 종교 중 어느 하나도 이 움직임을 막지 못한다. 완전히 정지시킬 수는 없다 해도 누가 노력은 하고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건 자기의 고통을 연장하는 자학증세에 다름 없다. 우리는 자신을 지혜롭고 점잖은 문명이라 계속 평가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 똑똑한 문명에 사는 우리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을까? 통계는 벌써 우리 국민의 멸종을 고하고 있다. 이렇듯, 사람을 완전 백치로 만드는 힘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 * *

 

나는 우울증과 혐오증에 빠져 일주일을 보냈다. 일주일 동안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일주일이 끝나갈 무렵, 화와 분노가 치솟았다. 그 힘에 맞서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그게 밝은 것인지 어두운 것인지는 상관없다. 우리를 조정하는 그 무엇에 대적하여 사람이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무슨 반항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혹은 그들이 아나스타시아와 결탁하여 내가 쓰기를 바란다면 나는 쓰지 않겠다. 고기를 먹지 말라 하면, 난 고기를 먹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겠다. 그들의 행위로 보아서는 그런 게 그들 마음에 안 드는가 보다. 한 번 말려보라지! 나는 매일 매일 술을 벌써 한 달째 마셨다. 만취 상태에선 기분이 좀 나아졌고 아침에 정신이 들면 다시 여러 가지 분한 생각이 끓어 올랐다. 왜 나는 책을 썼을까? 난 그냥 솔직히 다 털어놓으려고 한 것 뿐인데, 누군지 모를 손에 웃긴 장난감이 되고 말았다.

술에 고주망태가 되어 벽에 의지하며 침대에 올랐다. 그들과 나의 대대손손 자손들이 들으라고 난 이렇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알아들었소?! 내가 책을 쓴 건, 거짓의 가면이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오! 다른 길을 찾아보려 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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