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네바 강변의 도시

haanbs 2007. 9. 5. 19:44

네바 강변의 도시

 

- 뻬쩨르부르그(St. Petersburg)도 모스크바처럼 변했어? 내가 아나스타시야에게 물었다.

- 네바 강변에 세운 도시에서는 일이 다른 식으로 전개되었어.

(*네바강: 뻬쩨르부르그 시내를 관통하여 흐르다가 발틱해로 빠지는 강 이름. 뻬쩨르부르그는 1703년 제정 러시아 시대, 표트르 대제의 명에 의하여 네바 강변의 늪지에 서구를 향한 러시아의 창, 그리고 수도의 기능을 하도록 기초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독일 문화를 유별나게 좋아하였고 그래서 도시의 이름을 독일식으로 지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 이름은 러시아식인 표트르그라드로 바뀌었다. 1917년 혁명으로 권력을 얻은 볼셰비키들은 나라의 수도를 바로 모스크바로 옮기고, 1924년 레닌 사후, 도시의 이름을 그를 추모하여 레닌그라드로 변경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 레닌그라드는 독일 나치에 의해 900일이나 봉쇄되었지만 결국은 함락되지 않았다. 소련이 붕괴하고, 도시 이름은 주민투표에 의해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거기에선 어른들보다 어린이들이 먼저 미래를 좀 다르게 세워야 한다는 욕구를 감지했어. 아이들은 나라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도시를 바꾸기 시작했어.

- 그래? 또 아이들이네. 그래서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데?

- 폰탄카 운하변로(* 뻬쩨르부르그는 네바강 삼각주 늪지에 세워진 도시이고, 수많은 수로가 시내 곳곳을 흐른 다음, 네바 강에서 모인다. 폰탄카는 여러 수로 운하 중 하나.)

와 네프스키 대로(*Nevsky Prospect: 뻬쩨르부르그 시내의 가장 중심 도로. 해군성에서 알렉산더 네프스키 수도원까지 연장 4km 정도의 대로.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문학 거장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거리이다. 여럿의 성당, 박물관, 즐비한 상점, 그리고 신고전주의 풍의 주거 건물들이 나란히 서있는 이 거리는, 지금도 이 도시의 상업, 문화의 중심이다.)가 교차하는 모서리에 건설인부들이 흙구덩이를 파 놓았는데, 열한 살짜리 한 소년이 거기에 빠져서 발을 다쳤어. 다리를 다쳐서 걷지 못하는 동안, 소년은 폰탄카 운하변에 위치한 25번 건물의 한 집 창가에 오래도록 앉아 시간을 보냈어. 그 집의 창은 수로 쪽이 아닌 안마당 쪽으로 나있었어. 색이 바랜 지저분한 벽돌로 쌓은 벽이 시야을 막고 있었지. 그 옆에 바짝 붙어 건물이 한 채 더 있었는데, 지붕이 군데군데 둥그렇게 녹이 슬어있었어.

한 번은 그 소년이 아버지한테 물었어.

 

- 아빠, 우리가 사는 이 도시가 우리 나라에서 최고라면서요?

- 그렇지. 세계적으로도 맨 꼴찌는 아닐 게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답했어.

- 뭐가 그리 대단한데요?

- 뭐가라니? 우리 도시에는 박물관도 많고 다양한 기념비들도 많지. 시내 중심가의 건축양식은 사람들이 넋을 잃을 정도란다.

- 우리도 시내 중심부에 사는데, 그런데 왜 우리한테 보이는 건, 지저분한 벽면과 녹슨 지붕뿐이지요?

- 벽면이 , 그래. 우리 집 창 전망은 우리가 좀 운이 없구나.

- 우리만 그런가요?

- 누군가 또 그런 집이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은

 

소년은 자기 집 창문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사진을 자기 친구들한테 보여주었어.

동급생들이 모두 자기 집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을 찍어서 서로 비교해보았어. 그 그림들이란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지 않았던 거야.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신문사 편집부를 찾아가 아버지에게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어.

 

- 우리가 사는 도시를 다른 도시보다 빼어나다고 하는데 그건 왜지요?   

 

사람들은 그 소년에게 하늘 높게 솟은 알렉산드로프스키 대기둥 (* Aleksandriyski stolp: 제정 러시아 시대 황제-짜리의 겨울 궁전 뒤편 궁전 광장 정중앙에 세워진 하늘을 찌르는 기둥 탑. 황제 니콜라이 1세의 명을 받은 프랑스 혈통의 러시아 건축가, auguste Ricard de Montferrand가 디자인했고, 1834년 완공되었다. 니콜라이 1세는 자기의 전임이자 형인 알렉산더 1세가 1812년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 기둥을 세웠다. 기둥의 꼭대기에는 보리스 이바노비치 오르로프스키가 디자인한 알렉산더 1세의 얼굴 모습을 한 천사의 상()이 서있다. 높이 47.5m의 붉은색 화강암 기둥은 그 부류에서 최고 높이의 기둥이다.)이며, 에르미타즈(* Ermitazh: 세계적 명성이 있는 예술 박물관의 하나. 1764년 에카쩨리나 여제(女帝)에서 발단이 됨. 여제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기가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할 공간이 필요했다. 에르미타즈는 네바 강변에 건립된 5채의 화려한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Bartholomeo Rastrelli(1700-1771)가 디자인한 짜리들을 위한 겨울궁전이다. 1917년 혁명 후 곧바로, 전체 건물이 공공의 재산으로 선포되었고, 매년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명소이다.)며 카잔 성당(* Kazansky sobor: 네프스키 대로 변에 소재. 육중한 기둥이 두 열로 반원형을 이룬 건축 양식. 러시아 건축가 안드레이 보로니힌의 설계에 의해 1880년대 초기에 설립되었다. 나폴레옹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러시아 군대를 지휘한 야전 사령관 미하일 쿠투조프가 묻혀있는 곳이다. 소비에트 시대에 이 성당은 종교와 무신교 박물관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다시 러시아 정교가 관할하고 있다.), 그리고 전설적인 네프스키 대로 등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려 했지.

- 네프스키가 아름다운 게 뭐죠? 소년은 따지듯 캐물었어. 내가 보기엔 벽면이 다 헐어서 떨어지는 돌 구덩이 같아요.

 

사람들은 소년에게 훌륭한 건축물하며 건물 정면의 조각들을 지적했어. 모든 건물을 한꺼번에 다 개보수하고 복원하는 데는 돈이 모자라지만, 그 돈은 결국 생길 것이며, 그러면 네프스키 대로가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지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거라고 설명하려 애썼어.

- 조각 상이나 부조를 좀 단장했다 한들, 돌 구덩이가 뭐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다시 구멍을 때우고, 떨어지는 것을 다시 붙여야 할 텐데요.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신문사마다 찾아 다니며, 이제 분량이 크게 늘어난 사진첩을 보여주면서 똑 같은 질문을 계속 던졌어. 그 아이의 집요함은 기자들의 속을 긁어놓았어. 그러던 어느 하루, 청소년 신문기자 한 사람이 복도에서 그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던 거야.

 

- 또 너냐? 이젠 동지들을 많이 모아 다니는구나! 점점 더 늘어나네. 도시가 네 마음에 안 들고, 창문에서 보이는 전망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러면 너희들은 뭐 스스로 한 가지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냐? 너희들 말고도 비판하는 사람은 철철 넘쳐. 집을 행해 앞으로 갓! 일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어린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하는 소리를 나이든 노() 기자도 듣고 있었어. 그는 출입구 쪽으로 향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보고는 사색에 잠겨 젊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던 거야;

 

- 저 아이들이 집요한 걸 보고 있노라면, 옛날 이야기 하나가 생각나는구먼.

- 옛날 이야기라뇨? 무슨? 젊은 기자가 물었어.

- <<임금님은 벌거벗었대요!>>. 이런 대목 기억하지?

 

그리고 나서 소년은 더 이상, 편집실을 찾아 다니며 불편한 질문을 던지지도, 짊어지고 다니는 등 가방에서 사진첩을 꺼내 보여주는 일도 하지 않았어. 한 학기가 가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어. 그때, 소년이 친구들을 대동하고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이 신문사 편집국마다 퍼져나갔어. 노기자가 기자협회 건물에서 연신 그 소식을 퍼트렸던 거야:

- 아이구, 소년이 나타났어요 . 암요. 결국은 나를 만나고 갔어요.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와서 한 세 시간을 조용히 앉아 기다렸어요. 내가 그들을 맞았지요. 짧게 2분 내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끝내라고 내가 경고했지요. 그 애들은 들어오더니 책상 위에 떡 하니 제도지를 하나 펼쳐놓더라고요. 난 걸작을 보고 돌처럼 굳어졌습니다.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쳐다 만보고 입도 놀릴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2분여 지났습니다. 소년이 모두에게 말하더군요;

 

- , 가자. 여기 시간(시대)는 이제 우리 것이 아니야.

- 그게 무슨 말이냐? 아이들이 문을 나설 때 내가 소리쳤어요. 그 소년은 돌아섰지요. 난 다른 시대의 시선이 내 몸에 와 닿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렇고말고요,

- 그 외 다른 말은 없었나요?

- 뜸들이지 말고 얼른 말해보세요. 소년이 또 찾아 오겠답니까? 모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물었어. 노 기자는 답했지:

- 그 소년은 돌아서서 제 질문에 답변을 했습니다: << 여기 보이는 것이, 우리 네프스키(대로)입니다. 아직은 그림일 뿐이지요. 나중에 온 도시가 이렇게 될 거에요>>. 그리고 문이 닫혔습니다.

 

기자들은 설계도에 코를 묻고 일어설 줄 몰랐어.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지.

네프스키 대로 가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서 계속 이어진 돌 벽이 아니었어. () 건물의 일부는 남아있었지만, 대부분 한 집 건너 한 채씩 철거되고 없었어. 집들 사이에 생긴 공간에는 초록 오아시스가 장관을 이루었어. 자작나무, 소나무, 잣나무에는 새들이 둥지를 틀어서,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지. 키 큰 나무 아래에선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서 쉬고, 그 주변에는 아름다운 화단, 산딸기, 블루베리 관목이 에워싸고 있었어. 초록 오아시스가 대로 쪽으로 넘쳐 나와서, 네프스키는 이제 돌 구덩이가 아닌 녹색의 살아있는 훌륭한 가로수 길이었어.

건물의 정면에는 거울 조각들이 수없이 박혀있어서 수천의 햇빛조각들이 반짝반짝, 지나는 행인들과 장난을 치고, 꽃잎을 쓰다듬어주고, 오아시스마다 설치된 조그만 분수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와 놀았어. 햇빛조각 사이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 얼굴에는 미소가 떠다녔어

- 아나스타시야, 소년은 그 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거야?

- 어떤 소년?

- 신문사를 찾아 다니며 질문을 던지던 친구 말이야.

- 소년은 그리곤 돌아오지 않았어. 그는 건축의 거장이 되었어. 자기 친구-동지들과 함께 훌륭한 도시와 미래의 마을을 세웠어. 거기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 거야. 그가 지구상에 최초로 지은 훌륭한 작품이 바로 네바 강변에 세운 도시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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