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 우선은… 물론 울타리를 돌려야겠지. 집을 지을 건자재를 들여놓아야 할 때 울타리가 없으면 다 집어갈 테니까. 나중에 농사를 지으면 다 도둑질해 갈 수도 있거든. 혹, 울타리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
- 반대 안 해. 모든 동물들도 자기 영역을 표시해. 그런데 울타리 소재를 무엇으로 할건데?
- 뭐라니? 물론 널빤지로 하지. 아니 잠깐. 널빤지로 하면 너무 돈이 많이 들겠다. 임시로 우선은 기둥을 박고 철망으로 둘러 쳐야겠다. 담장 안에서 뭐 하는지 보이면 안 되니까 나중에 널빤지로 다시 해야 될 거야.
- 널빤지 울타리는 보수 안 하면 얼마나 가지?
- 소재가 좋으면 페인트 칠하고 니스 칠하고, 또 기둥을 땅에 묻히는 부분만큼 송진을 발라두면 한 5년은 수리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 이상 갈 수도 있고.
- 그 다음은?
- 그 다음엔 좀 수리도 하고 썩지 않게 페인트도 칠해야겠지.
- 그런 식으로 계속 울타리에 신경을 써야 할 거야. 자식이나 자손 대에 가면 울타리는 더 큰 걱정거리가 될 거고. 자손들에 일거리를 안기지 않고 썩은 건축물로 기분을 상하지 않게… 그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울타리가 더 튼튼하고 더 오래 갈 수 있게, 그래서 당신의 자손들이 할아버지에 대해 덕담을 나눌 수 있도록 그런 울타리를 지어보아.
- 물론 더 튼튼하게 할 수도 있어. 누구든 그렇고 싶지. 예를 들면, 기초와 기둥을 벽돌로 하고 기둥 사이를 녹슬지 않는 주조한 무쇠 살로 막으면 좋지. 그런 담장이라면 100년 이라도 서있을 거야. 하지만 이런 담장은 큰 부자나 설치할 수 있어. 생각해봐. 1헥타르면 사방 400미터야. 그런 규모의 담장은 수십만이 아니라 수백만 루블이 필요하겠다. 수명이 일이백 년은 갈 거야. 후손들이 보며 할아버지를 떠올리겠지. 주변 사람들 모두 부러워할 거야.
- 시샘은 좋은 감정이 아니야. 해가 돼.
- 어쩔 수 없잖아. 일 헥타르에 그럴싸한 담장을 치려면 돈이 꽤 든다니까.
- 그럼 다른 울타리를 생각해 내는 수밖에.
- 다른 어떤 거? 당신 무슨 좋은 생각 있어?
- 나중에 썩어 없어지는 수많은 기둥보다 나무를 심는 게 낫지 않을까?
- 나무? 나중에 나무에 못을 박으려고?
- 박을 필요가 없지. 숲에 있는 나무들을 봐. 기둥간 거리가 1.2-2 미터를 두고 많은 나무가 자라잖아.
- 그래, 자라지… 하지만 기둥간 구멍이 넓잖아. 울타리가 되긴 어렵지.
- 그 사이에다 뚫고 지나가기 어려운 관목을 심으면 되지. 상상해 봐. 아주 멋진 울타리가 될 거야. 집집마다 조금씩 모양도 다르겠지. 눈이 즐거울 거야. 훌륭하고 멋진 울타리를 지은 사람을 후손들은 오래 기억하게 될 거야. 울타리 수리에 자손들의 시간을 뺏을 일도 없고 오히려 득이 있지. 울타리는 장애물로서의 기능에 그치는 게 아니야. 어떤 이는 자작나무를 일렬로 심어 울타리를 만들 수도 있고, 누구는 참나무로 할 수도 있지. 누구는 또 창작욕을 십분 발휘하여 총천연색 울타리를 만들 수도 있겠지.
- 총천연색이라?
- 다양한 색의 나무들을 심는 거야. 자작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잣나무. 불타는 색의 빨간 열매가 송이송이 달리는 마가목을 덧심고 그 사이에 까마귀밥나무를 사이심기 할 수 있지. 벚꽃과 라일락에도 장소를 할애할 수 있겠지. 처음부터 모든 걸 잘 계획하는 거야. 무슨 나무가 높이가 얼마나 자라는지, 봄에 꽃은 어떻게 피는지, 어떤 향이 나는지, 어떤 나무에 어떤 새가 모이는지 모두 다 관찰해야 해. 너의 울타리는 새들이 노래하고 좋은 향이 넘치고 매일 색조가 조금씩 변화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될 거야.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황금 색채로 불탈 거야.
- 우와, 아나스타시야, 당신 꼭 시인 같다. 단순한 울타리를 그렇게 바꿔놓다니! 그 변화가 아주 좋은데. 왜 사람들은 예전에 몰랐을까? 칠할 필요도 없고, 수리할 필요도 없는데. 나무가 커지면 베서 장작으로 쓸 수도 있고, 다른 나무를 심어서 다른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고. 다만, 이런 울타리라면 나무를 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 2 미터 간격으로 나무를 심어도 구덩이 200개는 파야 하니까. 게다가 그 사이에 관목들도 심어야 하잖아. 당신은 당연히 기계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겠지?!
- 그 반대야, 블라지미르. 이 일에 있어 기계를 거부할 필요 없어. 어두운 힘의 발현 모두를 밝음 쪽으로 돌려야 해. 계획을 더 빨리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땅 경계를 따라 사방을 돌아가며 쟁기질을 해서 고랑을 내고 거기에 당신이 생각해둔 묘목과 관목의 씨앗들을 뿌릴 수 있지. 그 다음 다시 한번 갈아서 묘목을 덮고 땅이 굳어지기 전에 흙을 고르고 다듬어서 심은 나무들을 한 줄로 맞추면 돼.
- 훌륭하다. 그렇게 하면 혼자 하더라도 이삼 일이면 울타리를 다 세울 수 있겠다.
- 그럼.
- 그런데 애석하다. 나무가 자라서 울타리가 되기까지는 도둑을 막을 수 없으니. 기다리려면 하 세월이고. 잣나무고 참나무고 더디게 자라잖아.
- 자작나무나 사시나무는 빨리 자라. 그 사이에 심은 관목들도 성장속도가 빠르지. 정 서두른다면 2미터짜리 묘목을 심을 수도 있겠지. 자작나무가 다 자라면 베서 쓰면 되고 잣나무나 참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할 거야.
- 생울타리는 이 정도면 되겠다. 정말 맘에 든다. 자 이제, 주택은 어떤 구조로 갈지 말해줘.
- 블라지미르, 우선은 토지의 이용계획을 입안하는 게 순서 아닐까?
- 무슨 뜻이야? 토마토, 오이, 감자 등을 심는 이랑 말이야? 그건 보통 여자들 일이지. 남자들은 집을 짓는다고. 내 생각에는 유럽형의 근사한 큰 집을 지어야 할 것 같은데. 내 후손들이 나를 좋게 기억하겠지. 다른 식솔들이 살 작은 집도 하나 지어야 해. 토지가 넓으니까 할 일도 많겠지.
- 블라지미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계획하면 따로 일꾼들이 필요치 않을 거야.
주변의 모든 것이 기꺼이, 사랑으로 당신과 자식들과 손자들에 봉사할 거야.
- 절대 그렇게는 안 될걸. 당신이 사랑하는 다츠니키들도 그건 안 될 거야. 이들이 소유하는 땅은 기껏해야 5-6백 제곱 미터인데 그래도 휴일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해야 돼. 그런데 1헥타르면.. 여기다 농사를 진다면 매년 필요한 비료니 퇴비니 그 양도 수십 트럭은 갖다 부어야겠다. 밭에 퇴비를 뿌리고 또 모두 갈아엎어야 하거든. 안 그러면 잘 안 자라. 그리고 또 농약방에 가서 무슨 특수비료를 사다 줘야 해. 비료를 안 주면 땅심이 떨어져. 흙을 연구하는 농사전문가라면 잘 알지. 다츠니키들도 자기 경험으로 다 터득했어. 땅에 비료를 뿌려야 한다는 데 별 이견을 달 수 없겠지?
- 물론 땅에 비료를 줘야 해. 하지만 거기에 힘을 쓸 필요는 없지. 당신이 어디에 살든 단조로운 노동을 힘들여 하지 않아도 땅이 비옥하고 완전한 상태가 되도록 하느님이 원래부터 계획하신 거야. 그의 생각과 닿기만 하면 돼. 그의 완벽한 시스템을 느끼면 돼. 자기의 지혜 하나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 그럼 왜 지금 지구상 어디에서도 하느님의 시스템에 따라 비료를 주지 않지?
- 블라지미르, 당신은 지금 타이가 속에 있어. 주변을 봐. 나무들이 얼마나 커. 그 기둥은 얼마나 육중하냐고. 나무들 사이에는 풀이 있고 관목이 자라지. 산딸기도 있고 구즈베리도 있어. 그 외에도 타이가에는 수없이 많은 좋은 것들이 사람을 위해서 자라지. 그런데 지난 수천 년간 단 한 번도 그 누구도 타이가에 비료를 준 적이 없어. 그런데 땅은 비옥하거든. 누가 어떻게 비료를 주었다고 생각해?
- 누구라니? 난 몰라. 그래도 엄청 중요한 사실인걸. 놀랄만한 일이야. 타이가에는 왜 이런 저런 비료가 필요 없는지 당신이 그냥 말해줄래?
- 타이가에서는 당신 세상 사람들이 사는 곳만큼 그리 심하게 하느님의 생각과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타이가에서는 나무에서 잎이 떨어져 지고 바람에 잔가지가 부러지지. 나뭇잎과 잔가지 그리고 벌레들이 타이가 흙을 비옥하게 하는 거야. 자라는 풀이 흙의 성분을 조절하고 관목들이 산이나 알칼리의 여분을 없애도록 돕는 거야. 낙엽을 대체할 만한 비료는 당신이 아는 비료들 중 어느 것도 없어. 낙엽은 우주의 많은 에너지를 담고 있으니까. 별도 보고 해도 보고 달도 본 낙엽이야. 그냥 본 것이 아니야. 이들과 상호작용을 한 것이지. 수천 년이 더 지나도 타이가 흙은 비옥할 거야.
- 그렇지만 집을 지을 땅에는 타이가가 없잖아.
- 그러니까 계획을 하라는 것이지! 다양한 종의 나무로 숲을 이루라는 말이야.
- 아나스타시야, 그러지 말고 그냥 당신이 얘기해 주면 안될까. 어떻게 하면 부지의 토양이 저절로 비옥하게 되는지? 중요한 일이야. 이거 말고도 해야 할 일이 태산이잖아. 씨도 뿌리고 온갖 해충도 구제驅除해야 하고…
- 물론 세부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할 수도 있어. 더 좋기로는 모두 각자가 이 세우는 일에 자기의 생각과 마음과 꿈을 담는 것이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손자들에 기쁨을 줄 수 있을지 사람 모두는 직감적으로 느끼는 거야. 통일된 하나의 안은 있을 수 없어.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그림처럼 다 다를 수 밖에 없어. 각자 자기의 것이 있기 마련이야.
- 그럼 그냥 대강이라도 설명해봐.
- 알았어. 조금만 말해줄게. 그런데 우선은 더 중요한 걸 알아야 해. 모든 것은 사람의 복지를 위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거야. 당신은 사람이야. 당신은 주변의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어. 당신은 사람이라고! 지구 상의 낙원이 어떤 건지 가슴으로 이해해봐, 느껴봐.
- 철학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말해봐. 어디에 뭘 심어야 하는지 어디에서 뭘 파내야 하는지 말해봐. 어떤 작물을 심어야 후에 더 비싸게 팔 수 있지?
- 블라지미르, 작금의 농부와 농장주들에게 왜 행복이 없는지 알아?
- 왜 그렇지?
-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수확을 얻어서 팔려고 애쓰지… 땅보다는 돈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 자기가 태어난 둥지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지 않아. 도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외부로 나타나.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도 물론 중요해. 우리 같이 부지의 모습을 그려봐. 내가 시작할 테니 나를 좀 도와줘.
- 도와볼 테니, 시작해봐.
- 우리 땅은 공지에 있어. 생울타리는 우리가 이미 조성했고. 부지의 3/4이나 1/2에 다양한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해보자구. 그 숲의 자락, 그러니까 나머지 땅과 접하는 곳에는 동물들이 통과해서 심어놓은 작물을 밟지 못하도록 생울타리를 쳐야 해. 숲에는 좁게 심은 생나무들로 나중에 염소 한 두 마리가 살 수 있는 우리를 마련할 수 있겠지. 알을 낳는 닭이 숨을 곳도 마련해 줄 수 있고. 울타리 안에는 한 200 제곱 미터 넓이의 깊지 않은 연못을 조성하면 좋을 거야. 숲 속에는 산딸기나 구즈베리 관목을 심자. 가장자리를 따라 딸기를 심으면 되고. 또 숲에는 나무들이 얼마 자란 후 꿀벌을 위해 빈 벌통 3개 정도 만들어 놓는 거야. 더위를 피해 친구나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자도 나무를 심어 만들면 좋겠지. 산 것으로 침실을 꾸미고 또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도 조성할 수 있지. 아이들 침실과 응접실도 만들자.
- 우와 멋지다. 이건 숲이 아니라 무슨 궁궐인걸.
- 살아있는 궁궐이지. 영원히 자라는. 하느님께서 그렇게 다 구상하신 거야. 사람은 단지 모두에게 과제만 주면 돼. 자기의 취향과, 의도와, 생각에 따라 모두에게.
- 왜 하느님은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숲에는 뭐든 아무렇게나 자라잖아.
- 숲은 창조자인 당신을 위해 책과 같은 것이야. 블라지미르, 좀 더 자세히 살펴봐, 아버지께서는 모든 걸 거기에 써놓으셨어. 봐. 세 나무가 서로 반 미터 간격을 두고 자라지. 이 나무들을 한 줄에 세울 수도 있고 또 다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정렬할 수도 있어. 나무들 사이에는 관목을 적절히 심어놓으면 달콤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여기 나무 사이에는 풀이나 관목이 자라지 못해. 나중에 살아있는 집을 지을 때 이점을 고려해야겠지. 모두에 프로그램을 입력만 하면 되는 거야. 취향에 따라 필요하면 수정하면 되는 거고. 당신의 땅 부지에 자라는 주변의 모든 것이 당신과 자식과 후손들을 아끼고 보살피고 먹이고 할 것이야. 반드시 그렇게 돼.
- 먹고 살려면 텃밭을 가꾸어야 하고 그러려면 땀을 흘려야 해.
- 텃밭도 고역을 하지 않아도 되게 조성할 수 있어, 블라지미르. 이런 밭은 관찰만 잘 하면 돼. 숲에서 자라는 풀들처럼 그 사이에 채소를 키울 수 있어. 최상품의 토마토, 오이를 수확할 수 있지. 맛도 훨씬 더 있고 몸에도 훨씬 더 이로울 거야. 주위에 벌거벗은 흙이 없으면 그래.
- 잡초는? 해충이나 풍뎅이들이 다 버려놓을 텐데?
- 자연에는 쓸모 없는 게 없어, 불필요한 잡초라는 것도 없어. 사람한테 해가 되는 벌레들도 없고.
- 없다니!? 메뚜기 떼는? 아니면 예를 들어 감자 밭을 버려놓은 콜로라도감자잎벌레는?
- 그래, 버려놓지. 그것으로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거야. 그런 사고가 계속되는 것은 흙의 온전함이 깨져버린 것이라고. 창조자의 의도와 어긋나는 것이라고. 어떻게 해마다 같은 곳을 계속 경작할 수 있어? 흙에 무리가 가는 거야. 미처 아물지 못한 상처의 딱지를 긁어내며 그곳이 잘 아물기를 바라는 격이지. 지금 당신과 구상하고 있는 우리의 터에는 콜로라도감자잎벌레나 메뚜기 떼가 근접하지 않아. 위대한 조화 속에서 성장하면 그 열매에도 조화가 담기게 되어 있어.
- 당신이 말한 대로 모든 게 저절로 된다면, 당신이 구상한 부지에서는 사람이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되고, 또 농약으로 해충과 싸우지 않아도 되고, 또 김을 매지 않아도 되고, 또 모두가 저절로 알아서 큰다면, 사람이 할 일이 뭐가 있을까?
- 낙원에서 사는 거지.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야. 그런 낙원을 짓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과 접하게 되고, 그러면 그가 동참하는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 거야.
- 새로운 창조라니?
- 그에게는 예전의 것이 다시 지어지는 순서가 오는 거야. 우리가 아직 못다한 그림을 다시 그려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