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형과 아우

haanbs 2007. 5. 30. 07:57

형과 아우

(옛날 이야기)

 

 그 언제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옛날 옛날에 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이 부부에게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어요. 늘그막에 아내는 두 아들, 쌍둥이, 형제를 낳았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출산이 난산이었던 지라 여인은 두 아들을 낳고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유모를 구하고 아이들이 잘 크도록 갖은 애를 썼어요. 그리고 아들이 열네 살 때까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열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도 세상을 하직(下直)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를 묘에 모신 후 두 아들은 슬픔에 잠겨 방에 앉아있었습니다. 형과 아우는 삼 분 차이를 두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때문에 둘 중 하나는 형, 하나는 아우가 되었던 것이죠. ()의 침묵이 흐른 뒤 형이 말했습니다:

 

-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며 우리한테 삶의 지혜를 전하지 못하고 가심을 슬퍼하셨어. 아우, 지혜가 없으니 이제 우리 어떻게 살지? 지혜가 없다면 우리 가문은 불행하게 이어질 거야. 아버지로부터 지혜를 전수받은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할 거야.

- 걱정 마, . 아우가 형에게 말했습니다. 형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 혹 알아, 시간이 지나며 형은 생각하는 와중에 지혜도 터득할 수 있을 거야. 난 형이 말하는 대로 다 할게. 난 생각에 잠기지 않고도 살 수 있어. 그래도 사는 게 기뻐. 날이 트고 해가 저도 난 기뻐. 난 그냥 살래, 집안일 하고. 형은 지혜를 구해봐.

- 좋아. 형이 동생한테 답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앉아서는 지혜를 얻을 수 없어. 여기엔 그게 없어. 누구도 그걸 여기에 남기지 않았으니까. 어느 누구도 그걸 스스로 우리한테 가져다 주지는 않을 거야. 난 마음 먹었어. 내가 형이잖아. 내가 우리 둘을 위해서, 유구히 이어질 우리 가문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지혜를 나 스스로 찾아야겠어. 찾아서 우리 집으로 가져올게. 우리 가문의 후손들과 우리 자신에 선사할게. 우리 부모님께서 남긴 값나가는 물건을 모두 가져가서 온 세상 여러 나라의 현자들 모두를 보면서 순회할게. 그들의 가르침을 얻어서 고향집으로 돌아올게.

- 긴 여정이 될 거야. 아우가 형을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집엔 말이 있으니 말과 마차를 가져가. 방랑의 길에 고생을 좀 줄이려면 집안의 재물을 단단히 실어. 난 집에 남아서 지혜를 터득한 형을 기다릴게.

 

형과 아우는 오랫동안의 이별을 고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형은 이 현자 저 현자를 찾아 다녔어요. 한 교회에서 다른 성당으로, 동방과 서방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북쪽에도 가봤고 남쪽에도 머물렀습니다. 형은 기억력이 아주 좋았습니다. 날카로운 지혜는 모든 걸 재빨리 끌어 안았고 쉽게 기억했습니다.

형은 그렇게 60년이란 세월을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그의 머리와 턱수염이 쇠기 시작했습니다. 뭐든 알고자 하는 그의 이성은 그래도 계속 여행을 하며 지혜를 터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머리가 쇤 방랑자를 현인이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를 지어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지혜를 나누었습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그의 말에서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커다란 영광이 그가 가는 길을 앞서 가며 위대한 현인의 행차를 마을에 알렸습니다.

영광의 후광을 입고, 스승을 깍듯이 따르는 제자들의 무리에 싸여 흰 머리 현인은 자기가 태어나서 열다섯의 나이에 등진, 그리고 육순을 오지 못한, 자기 집이 있는 그 고향 마을로 점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그를 맞으러 나왔습니다. 형과 닮은 모습으로 머리가 쇤 동생도 크게 기뻐하며 형을 맞으러 뛰어나와 현인-형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리고 행복에 젖어 속삭였습니다:

 

- 현자가 된 나의 형, 나를 축복해줘. 우리 집으로 들어. 먼 길을 온 형의 발을 내가 씻겨줄게. 지혜로운 우리 형, 우리 집으로 들어, 좀 쉬어.

 

현인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위엄 있는 몸짓으로 언덕에 남아서 환영 나온 인파의 선물을 거두고 지혜로운 담화를 나누도록 명하고는 동생을 따라 집으로 들었습니다. 널찍한 방안 탁자 옆에 흰 머리의 위풍당당한 현자는 지친 듯 앉았습니다. 동생은 따뜻한 물로 그의 발을 씻겨주며 현인-형의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현자는 말했습니다:

 

- 난 내 할 일을 다했다. 난 이 집에 오래 머물지 못 하노니,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이제 나의 운명이니라. 허나 내가 네게 지혜를 집으로 가져오기로 약조를 한 이상, 그 약조를 지키는 뜻에서 너의 집에 하루 머물러야겠다. 이 시간에 현명하고도 현명한 진리를, 나의 아우 네게 전하마.

첫째: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동산에서 살지어다.

아름다운 수가 놓인 깨끗한 수건으로 발을 닦아주며 동생은 형의 마음에 흡족하도록 수선스레 굴며 형에게 말했습니다:

 

- 우리 동산에서 딴 열매들이 탁자에 놓여있어. 내가 형을 위해 최고 좋은 것으로 직접 딴 것이니 먹어봐.

 

현자는 온갖 좋은 열매들을 음미하고는 말을 이었습니다:

 

- 지구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가문(家門)의 나무를 길러야 하느니라. 그가 죽으면 그 나무는 후손들에게 좋은 기념이 될 것이야. 그건 또한 후손들이 숨쉬고 살 공기를 정화할 것이느니 우리 모두는 좋은 공기를 숨쉬어야 한다.

 

아우는 수선스레 재빨리 몸을 놀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용서해, 나의 지혜로운 형, 내가 창문을 여는 걸 깜빡 했네. 형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셔야 하는 건데. -동생은 속 창을 당겨서는 창문을 확 열어 제치고 말을 계속 이었습니다. 잣나무 두 그루의 공기를 들이마셔. 이건 형이 떠난 해 심은 거야. 한 묘목의 구덩이는 내 삽으로 팠고 둘째는 우리가 어렸을 때 형이 가지고 놀던 삽으로 파고 심었어.

 

현인은 생각에 잠겨 나무를 높게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 사랑은 위대한 감정이니라. 누구나 다 사랑으로 일생을 살 수는 없지. 위대한 지혜가 있느니라. 사람은 누구나 매일같이 사랑을 추구해야 하느니라.

- , 지혜로운 나의 형! 동생은 환호했습니다. 형은 위대한 지혜를 얻었구나. 형 앞이라 내가 정신이 없네, 용서해, 내 처자(妻子)도 소개를 안 했는 걸. 그리고 문 쪽을 행해 소리쳤습니다: 노인네, 어디 있는 거야, 부엌데기, ?

- 여기 있잖아요. 명랑한 아내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 접시를 들고 문에 나타났습니다. 떡 때문에 좀 늦었지 뭐에요.

 

상에 떡을 내려놓으며 쾌활한 할머니는 두 형제 앞에서 장난스럽게 살짝 앉는 자세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 그러니까 자기 남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낮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는데, 그 속삭임을 형은 들을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당신, 나 가서 좀 누워야겠어요.

- 그런 게 어딨어, 이 사람아, 갑자기 쉬어야겠다니. 나의 친형, 귀한 손님이 찾아왔는데 당신은

- 내가 아니라 머리가 어지럽고 좀 메스껍기도 해요.

- 무슨 일로 동작이 잰 당신이 그러나?

- 아마, 또 영감 책임일 거에요. 또 우리한테 아이가 태어나려나 봐. 나가면서 할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 용서해, . 아우는 어쩔 줄 모르며 형 앞에 사과했습니다. 저 할망구는 지혜의 값을 몰라. 성격이 명랑하더니 늙어서도 저러네.

 

현자는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습니다. 그의 생각을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끊었습니다. 그걸 들은 현자가 말했습니다:

 

- 행복하고 정의롭게 자식을 키우려면, 사람은 누구나 위대한 지혜를 얻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게야.

- 지혜로운 나의 형. 내게 말해줘. 난 내 아이들과 손자들을 진정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 이 시끄러운 녀석들이 내 손자들이야.

 

여섯이 안 돼 보이는 사내아이 둘과 한 네 살쯤의 계집 아이가 문에 서서 시비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얼른 조용히 시키려고 동생이 서둘러 말했습니다:

 

- 시끄러운 녀석들아. 무슨 일인지 빨리 말해보거라. 우리가 대화하는데 방해하지 말거라.

- 어어. 나이가 어린 남자 아이가 탄성을 질렀습니다. 하나에서 두 할아버지가 됐네.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가짜인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지?

- 여기 우리 할아버지가 앉아계시잖아, 그것도 몰라?

손녀 아이는 자기 할아버지한테 뛰어가서는 다리에 얼굴을 대고 수염을 당기고 재잘거렸습니다:

- 할아버지, 할아버지, 내가 배운 춤을 보여주려고 혼자 할아버지한테 오는데 오빠들이 귀찮게 나를 따라 다녀요. 한 명은 그림을 그린대요, 봐요, 저기. ()하고 분필을 가져왔지. 둘째는 피리와 퉁소를 가져왔어요. 할아버지가 자기한테 피리와 퉁소를 불어달라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런데 내가 맨 처음 할아버지한테 오려고 했단 말이에요. 오빠들한테 그리 말해주세요. 저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세요, 할아버지.

- 아니야, 내가 먼저 그림을 그리러 왔어. 그리고 나서 동생이 퉁소를 분다고 날 따라 온 거야. 얇은 판자 조각을 든 손자가 말했습니다.

- 할아버지가 둘이니까 판정해보세요. 손녀가 재잘거렸습니다. 우리 중 누가 먼저 왔지요? 내가 먼저 온 것으로 판정을 하세요. 안 그러면 골라서 슬피 울어버릴 거에요.

 

손주(孫子) 녀석들을 쳐다보는 현자의 얼굴엔 미소와 함께 슬픔이 서려있었습니다. 현자는 대답을 준비하느라 이마에 주름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말이 없었어요. 아우는 잠시의 침묵을 그냥 두지 않고 부산하게 움직였습니다. 어린 아이 손에서 퉁소를 얼른 받아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습니다:

 

- 얘들아, 다툴 일 하나도 없다. 깡총깡총 깡총아, 예쁜 녀석아! 춤을 추거라, 내가 춤에 맞추어 퉁소를 불어주마. 아 그리고 나의 착한 악사, 내가 피리 부는 걸 도와주렴. 그리고 너 화가, 너는 음악의 소리가 그려내는 걸 그림으로 그리거라. 발레리나가 춤추는 걸 그려보려무나. 자 어서, 시작해볼까.

 

아우는 퉁소에서 흥겹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뽑아냈습니다. 손주들은 모두 동시에 그를 따라 하며 자기들이 좋아하는 걸 표현했습니다. 미래의 유명한 음악의 거장은 피리를 부는데 멜로디에서 뒤쳐지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손녀 아이는 발레리나처럼 팔짤팔짝 뛰면서 새빨개 진 채 즐겁게 춤을 추었습니다. 장래의 화가는 흥겨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현자는 함구하였습니다. 현자는 깨달았습니다. 흥겨운 한마당이 끝나자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 아우, 아버지가 남기신 끌과 망치 기억하지, 그럴 내줘. 돌 판에 나의 중요한 가르침을 새겨야겠어. 지금 떠나야 해. 아마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나를 막지마, 기다리지마.

 

형은 떠났습니다. 하얀 머리의 현자는 제자들과 함께 돌 판에 다가갔습니다. 방랑자들이 지혜를 찾아 집을 떠나 먼 길을 가도록 인도한 좁은 길이 그 돌을 감아 돌았습니다. 날이 가고 밤이 되었습니다. 흰 머리 현자는 돌을 두드려 거기에 문장을 새겨 넣었습니다. 힘을 소진한 노인이 다 마쳤을 때 그의 제자들은 돌 판에 새겨진 글귀를 읽었습니다:

<< 방랑자여, 뭘 찾소? 모두 다 그대 안에 있는 걸. 새 걸 찾지 못할 거요. 매 걸음마다 잃을 뿐이외다. >>

 

옛날 얘기를 마친 아나스타시야는 입을 다물고 묻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본다. 내가 얘기를 듣고 뭘 깨달았는지 생각 중인가 보다.

 

- 얘기를 듣고 보니, 아나스타시야, 형이 말한 모든 지혜를 동생은 실제 삶에서 살고 있었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알 수 없는 건, 누가 아우한테 그 모든 지혜를 가르친 거야?

- 누구도 아니야. 우주의 모든 지혜는 마음이 지어진 순간부터 영원히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어있어. 교묘히 현자 노릇을 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람의 마음을 주()로부터 종종 떼어 놓는 게 현자들이야.

- ()로부터? ()가 어디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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