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씨가원

순무로 먹은 점심

haanbs 2011. 10. 13. 15:54

아침 일찍 일어나 제7권 "삶의 에너지" 일부를 번역하고, 동네로 내려가 아침을 먹고 들로 나섰다. 들깨를 베러 간다고 노모께서 밥상에다 메모를 남기셨다. " 밥 먹고 물하고 사과하고 빵하고 가지고 나와, 나 들깨 베러 간다"

벼 익은 논은 황금 빛으로 밝고, 벼 베는 콤바인, 일톤이나 들어가는 큰 볏자루를 운반하는 트럭으로 시골 길이 분주하다.

들깨를 베기 시작한다. 새로 산 조선낫이 서슬 퍼렇다. 몇 포기를 베고 나니 요령이 생긴다. 한 이랑, 두 이랑... 올 해는 700평에 들깨를 심었다. 어머니는 한 이랑 베고 일어서서 나머지 이랑 수를 센다.

- 허리 아파. 얼마나 더 남았나아아?

난 어미니께 권한다.

- 이랑을 세지 마세요. 더 힘들어요. 그냥 한 이랑만 보고 베다보면 금방 다 베요.

- 야, 그래도 어떻게 안 세냐...

 

가을은 가을. 그것도 늦가을인데 일을 하다보면 햇빛이 아직도 뜨겁다.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옷에 땀이 배기 시작한다. 물을 찾는다. 속이 출출하다.

 

한 달 전인가 난 이 밭에 와서 순무씨를 얼마 뿌려놓았다. 두더지가 헤집고 다닌 길, 흙이 폭신폭신한 곳에 순무 씨앗을 박아놓고 거의 잊고 있었는데, 가보니, 주먹만한 보랏빛 순무가 크고 있다. 엄청 대견하다.

- 엄마, 순무가 꽤 컸는데요.

- 뽑아 와라.

난 두개를 뽑아 들었다. 어른 주먹보다 좀 더 크다. 먹음직스럽다. 어제 진흙 오븐에 군 "리뾰쉬카-납작한 빵"를 한 손에, 순무는 싹을 반 비틀어 잘라 꺼꾸로 다른 한 손에 들고, 점심식사를 시작한다. 와삭와삭. 빵에 순무, 사과 한 개, 샘물 - 엄청 단순하고, 그래서 각각의 것의 맛을 더 섬세하게 느끼면서 맛있는 식사를 한다. 빵 한 입, 순무 한 입. 순무가 아주 부드럽고 달콤하다. 입에서 섞이는 빵 맛, 순무 맛, 들판의 가을 맛...

- 순무 먹으니 배가 불뚝 나온다 - 어머니 말씀.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일도 엄청 효율이 난다. 나머지 절반을 다 베는데 목도 그리 마르지 않았다.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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