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장애를 넘는 법

haanbs 2008. 3. 5. 07:54

장애를 넘는 법

 

아들과의 대화가 더 이상 진전하지 못했다.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상상으로 검증하여 참이나 거짓을 쉽사리 가려냈다. 심지어는 역사학자들이 교과서에 기술한 결론까지도 거짓이라고 밝혀낸 것이다. 아들보다 뭔가 나은 구석이 있는 아버지가 도무지 성립되지 않았다. 대화를 함으로서 나의 권위가 서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아나스타시아 덕분에 세워진 권위까지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생각의 힘에 대한 그 아이의 확신이 나는 왠지 겁이 났고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달라. 아버지와 아들 간의 대화는 실패하고 말았어. 나는 그 애가 나의 친아들임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애는 별난 존재였다. 우리는 침묵했다. 그때 아나스타시아 말이 생각났다: << 어린애와는 항상 진솔하고 공정해야 해. >> 막막한 상황인지라 화도 났다: << 진솔하라고? 공정하라고? >> 난 노력했어. 하지만 그 결과가 뭐냐고? 끝까지 진솔하고 공정해야 한다면 에라, 지금 같은 상황에는 그보다 더 한 것도 얘기할 수 있지. 그리고 난 단숨에 쏟아냈다:

 

- 볼로자, 솔직히 말하면, 너와 나 사이엔 아들과 어버지로서 대화가 안 돼. 우리는 달라. 각자가 갖고 있는 개념, 정보, 지식이 달라. 네가 친아들처럼 느껴지지 않는구나. 너를 만지기조차 겁이 나. 우리 세상에서는 아이를 그냥 귀엽다고 만져줄 수도 있고, 잘못하면 벌을 주거나 살짝 때릴 수도 있어. 하지만 나는 너를 그리 대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구나. 우리 사이의 장애는 극복 불가능이야.

 

나는 말을 마쳤다. 앉아 침묵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진, 좀 특이한 사고를 하는 작은 내 아들을 바라본다.

곱슬머리를 내 쪽으로 돌리고 이번에도 먼저 말문을 연 건 그 아이였다. 이번에는 그 아이의 목소리에 슬픔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아빠, 아빠와 나 사이에 무슨 장애가 있어요? 나를 친 자식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요? 아빠는 모든 게 여기와는 조금 다른 세상에 오래 계세요. 거기서는 가끔씩 부모가 자기 아이들을 때린다고 알고 있어요, 아빠 거기선 모든 게 좀 다르대요. 난 생각했어요, 아빠, 내가 금방

 

그 애는 벌떡 일어서서 뛰어가더니 마른 가시들이 덥힌 나뭇가지를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 받아요, 아빠. 아 가지로 저를 때리세요. 아빠가 오랫동안 머무는 곳, 그 세상의 부모들이 자식을 때리듯이 때려주세요.

- 때려? 너를? ? 이건 또 무슨 해괴 망측한 생각이냐?

- 아빠가 오래 머무는 세상에서는 부모들이 자기 친 자식만 때린다는 거, 난 알아요. 난 아빠의 친 아들이에요. 아빠, 나를 때려서 나의 친 아버지임을 느껴보세요. 그렇게 하면 좀 쉽게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이쪽 손하고 발은 때리지 마세요. 이쪽 손은 아픔을 느끼지 못해요. 발도 느낌이 없어요. 아직 감각이 없어요. 그 외에는 온 몸이 고통을 느껴요. 그런데 아빠, 아마 난 울지 못할 거에요. 다른 아이들이 우는 것처럼. 난 한 번도 운 적이 없어요.

-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말하는 그 세상에서도 아무 이유 없이 아이를 때리는 일은 절대 없어. 벌을 주기도 하고 살짝 때리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아이들이 부모 말을 듣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할 때만 그래.

- 그래요, 아빠. 부모 생각에 아이가 잘못했다는 경우에 그렇지요.

- 그렇고말고. 

- 그러면, 아빠, 나의 행동에서 무엇이든 잘못됐다고 생각하세요.

- << 생각하라니? >> 그릇된 행동은 모두가 바로 알 수 있는 거야. 그릇된 행동이라 여기고 싶어 그렇게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모두가 잘못임을 알아야 하는 거야.

- 매를 맞는 애들도요?

- 그래, 아이들도.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도록 때리는 거야.

- 때리기 전에는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하나요?

- 못하나 보지.  

- 설명을 들어도 알지 못해요?

- 못해. 그러니까 그게 죄지.

- 알 수 없게 설명하는 사람한테는 책임이 없나요?

- 그 사람한테는 없지. 그 사람은 네가 잘 못 알아들으니 나까지 헷갈리는구나!

- 그거 잘 됐네요.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이제 나를 때리세요. 그러면 우리 사이에 장애가 없어질 거에요.

- 왜 그리 못 알아들어? 처벌은 예를 들어 이런 경우에 할 수 있는 거야. 예를 들면 엄마가 네게 엄하게 말씀을 하셔. << 볼로자, 이것 하면 안돼. >> 그런데 너는 하지 말라는 얘기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걸 하는 거야. 이제 알겠니?

- 알아들었어요.

- , 한 번이라도 엄마가 금()하는 걸 한 적 있니?

- , 한 적 있어요. 두 번이요. 엄마 아나스타시아가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난 더 할 거에요.

 

아들과의 대화는 내가 사전에 의도한 것과 계속 빗나갔다. 현대 문명사회를 소개하는 일이 하나도 되는 게 없었고, 따라서 나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없었다. 나는 아들이 내리는 결론에 매번 너무도 화가 나서 주먹으로 나무둥치를 쳤다. 그리고 아들한테 쏘아붙였다. 결국 내 자신에게 한 말이지만.

 

- 우리 세상에서도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을 매로 다스리지는 않아. 오히려, 올바른 보육시스템을 생각하고 글로 쓰는 사람들이 많아. 나도 찾아보았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어. 내가 여기 타이가를 찾아올 적 마다, 너는 아직 너무 어렸어. 난 항상 너를 꼭 안고 싶었단다. 그런데 아나스타시아는 말했어: << 다정한 애무로서도 어린 아이의 생각을 방해해서는 안돼. 어린 아이의 사고 과정은 아주 중요해. >> 그래서 난 너를 바라보기만 했어. 너는 항상 무슨 다른 일로 분주했고. 이제는 너와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 아빠, 그런데 지금은 나를 안고 싶지 않아요?

- 안고 싶은데 못 하겠어. 그 교육 시스템인가 뭔가 때문에 내 머리가 온통 뒤죽박죽이구나.

- 그럼, 내가 해도 되지요, 아빠를 껴안을게요, 아빠? 지금 우리의 생각은 같아요.

- 네가? 너도 나를 포옹하고 싶어?

- 그래요, 아빠!

 

그 애는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어느새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 애는 한 손으로 내 목을 끌어 안았고, 머리를 내 어깨에 밀착했다. 난 아이의 심장박동을 들을 수 있었다. 내 심장은 빠르고 불규칙하게 박동했다. 숨 쉬는 게 좀 힘겨웠다. 몇 초 후이던가 몇 분 후던가 불규칙하게 뛰던 심장이 문득 고른 리듬으로 변하더니 다른 심장 박동에 조율되는 듯 했다. 이내 숨쉬기가 편해졌다. 곧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 너무도 아름답다!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훌륭한가! 이 세상을 생각해낸 존재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좋은 말을 더 많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속에서만 쌓이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왠 일인지 속삭임으로 물었다:

 

- , 아들아, 말해보거라. 엄마가 금했는데 네가 했다는, 그게 무슨 일이니? 또 할 거야?

- 언제 한번은 엄마 아나스타시아를 보니보았는데 - 볼로자는 내 어깨에서 머리를 떼지 않고 처음에는 속삭임으로 대답했다.

아들은 내게서 떨어져서는, 땅에 내려앉아 손으로 풀밭을 쓰다듬었다.

- 풀은 좋을 때는 항상 초록이에요.

 

아이는 얼마간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 머리를 치켜들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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