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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시야 벌통의 기적 아니면 생 고생?
벌써 지난 해부터 벌통을 만들어야 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작년에 못 해서 벌들이 날아다니는 걸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서운하던지... 그런데 올 봄에도 개울가 버들 강아지에 날이 좋으면 벌들이 벌써 왕왕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또 늦는가 보다, 이러다간.
우리 동네 야산을 벌처럼 들쑤시고 다녔다. 아나스타시야가 말한 활엽수 재목은 인근 어느 제재소에 전화를 해도 없다는 말만을 들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지냈다. 없으면 내가 찾는 수 밖에. 그리고 찾았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과연 그런 게 있을까 반신산의하고 있었는데, 팔 걷어 붙이고 보니 내가 매일 매일 지나 다니는 길 옆 산소 자리에 아람드리 밤나무가 여럿 쓰러져있었다. 산소 만든다고 포크레인 중장비가 밀어버렸던 것.
옳다구나! 그날로 동네에 전기톱을 갖고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찾아냈다. 톱만을 빌려줄 수는 없다하여 톱날과 수고비를 치를 테니 나무 좀 잘라달라고 졸랐다. 그날로 현장으로 달려가 기장을 한 일미터 삼십으로 잘랐다. 금방 일을 마치고는 이제부턴 자네가 알아서 하게' 말만 남긴 채 유유히 사라진다.
감솨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걸 어찌 나른다?! 굵은 놈은 양팔로 안아도 안기지 안을만큼 굵직하고, 무게도 이백킬로는 나가 보였다. 그 보다 작은 것들이 굵직굵직하게 한 여덟은 되어 보였다. 그외 작은 것까지 합치면 3톤 이상 무게가 된다. 난 다시 집으로 달려와 지렛데를 가지고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으랏.. 끄응.. 최고 큰 녀석은 앞뒤 좌우로 꼼짝도 하려 들지 않는다. 중치들은 반쯤 내려다 놨는데 이 놈이 앞 일을 꽉 막고 있다. 안되겠다. 오늘은 기운도 쇠진했고, 여기서 철수! 러시아 속담에 "아침이 저녁보다 지혜롭다"란 말이 있다. 과연 그 다음날 아침엔 머리도 잘 돌고 힘도 나서 무거운 놈을 들어올렸다. 으라라.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아서 산, 강을 넘듯 장매물을 넘었다.
내려오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차에다 싣고, 또 어디가서 켜온담. 인근에는 제재소가 없고, 그래서 포천의 한 제재소엘 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트럭이 있어야 하는데 없고, 또 트럭을 빌린 날은 백 킬로가 넘는 놈들을 차에 실어줄 중장비가 없고. 그렇게 나는 몇 일을 속앓이를 하며 혹 저거 누가 가져가면 안돼는데 불안한 마음에 하루에도 몇번씩 와서 보고 갔다. 몇 일이 지나갔다. 햇님이 방긋나면 아이구 꿀벌들이 또 돌아다닐 텐데, 나의 오딧세이는 언제 종착항에 닿을 내리려나...
친구의 트럭을 빌려 무조건 오라고 했다. 차를 현장에 대고 낑낑대고 있는 우리를 보고는 지나가던 트랙터가 밭섶으로 들어선다. 오 구세주시여! 사실 난 이 병수형님한테 이틀 전에 부탁을 했었다. 그 땐 이렇게 말하더라: 야, 그거 시간 많이 걸러 야. 니가 트랙터 끌어다 해. 그거로 끝.
그런데 오늘 지나가다 이렇게 차에 실어주다니. 날은 저물기 시작했지만 나는 친구 덕조와 함께 의정부를 지나 개렁개렁 할딱거리는 트럭으로 무슨 산인지 힘들게 넘었다. 포천 제재소에서는 그렇게 도착한 우리를 먼 산 보듯한다. 늦은 시간이라 영업이 끝났다고. 부탁을 해서 달라는 대로 노임을 지불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내 키보다 훨씬 큰 톱이 위 아래로 빙빙 돌고, 나무를 전동차에 고정시킨다음, 그 차를 타고 톱을 향해 돌진. 그 무거운 통나무들이 톱에 닿자마자 서걱서걱 잘도 켜진다. 작업은 그렇게 한 삼십분만에 끝났다.
그걸 싣고 다시 포천에서 의정부를 넘는 고개를 건너는데 이제는 좀 내 마음이 놓였다. 이때 덕조란 친구 왈: 야, 어떤 벌이 입주해 살지는 모르지만, 그 벌들은 최고의 대접을 받는 거다. 벌통이야 거기 들어간 정과 성으로 따지면 가격으로 메길 수 없겠지만 몇 백만원은 가겠다. 순 국산 원목에댜, 활엽수, 육 센티가 넘는 두께... 거의 불가능이야.
덕조란 친구는 싱크대를 제작하는 목수다. 공구도 다 있고. 원당3리에 산다. 우리집은 원당1리고. 그 날은 밤이 늦어 켜온 원목을 바람이 잘 통해서 마르도록 사이사이에 각목을 놓고 쌓아놓고, 난 집으로, 이 친구는 그날 받아 놓은 주문품을 제작하느라 새벽 세시까지 작업을 했단다. 그러니 벌통을 값으로 따지기 힘들지...
제재목을 한 이틀 말려서 드디어 벌통 제작에 들어갔다. 대충대충 켜온 목재들을 가로 세로 길이 맞추어서 제2차 가공을 했다. 아직도 덜 말라서 회전 전기 톱이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 각목 하나 하나가 보통 이삼십 킬로그램은 되니 다루기가 만만치 않다. 그 놈들을 끼워 맞추고 못 질을 시작했다. 두께가 육 센티나 되다보니 못을 장에 나가서 사와야 했다. 한쪽 면 맞추고, 옆 면 맞추는데 그걸 올려놓은 공작대가 무게를 못 이겨 끄응 신음을 한다. 이날 제작을 다 마치지는 못하고 열리는 쪽 문은 못 다 해서 달은 채, 늦은 밤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벌통을 갖다 놓을 야산으로 향했다. 우리 둘은 벌통을 차에서 조심조심 내리고 그날은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몇 일 지나서, 덕조 친구가 전화해서 왈: 문짝 해 달았어? 그거 入蜂式 해야지! 빨리 해. 몇 번이나 이렇게 전화를 했다. 난 벌통을 영구히 설치할 곳에 올려놓아야겠기에 벌 가족을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흐르고, 덕조는 벌통이 한 오백킬로는 나갈테니 너 혼자는 어림없고 다시 트랙터를 불러서 부탁을 하란다.
이것 저것 다 어려워서, 난 혼자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벌통은 굴려서 산 꼭대기에 올려놓고야 말겠다! 철봉 사다리를 바닥에 깔고 굴리기 시작했다. 한 번 구르더니 두번도 구르고 세번도 구른다. 구른 만큼 내 이마에선 땀방울이 송글송글하다. 정상에 다다랐을 때, 최종 난제가 떡 버티고 있었다. 저걸 어떻게 높이 삼십센티 나무 그루터기 위에 올려놓는다?! 어림도 없는 발상처럼 보였다. 한 두어시간 싸워서 결국은 올려 놓았다. 혼자서.
사진에서 보듯 늠늠히 서있는 벌통이 나와 벌써 한 몇 주간을 싸운 놈이다.
오래 오래 봉사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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