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원家園

가원마을

haanbs 2013. 6. 2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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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1리. 우리 마을은 38선 이북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북단 마을이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이 마을에서 난 태어나고 중학교 때까지 자랐다. 나의 고향이다.


생태공동체니 영성 공동체니 여러 공동체를 만들어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많지만, 난 싫다. 무소유도 싫고 자연을 신성시하며 신주단지 모시 듯 하는 것도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왠지 그 틀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같다.


우리 마을에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지만 미운 이도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그와 무관하거나 소리 없는 미소만을 짓는 사람 등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다. 윗 동네 누가 어쩌고 아랫 동네 누가 어쩌고 마을이 분열되어 큰일이라 하는 소리도 있다.


그렇지만 난 동네 분들한테 감동 먹었다. 년초부터 난 이장이 되어, 동네 분들에게 멋진 마을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동네 분들이 의기투합했다. 잘 해보자고. 그런데 이정도 일 줄이야...


해바라기를 도로변에 심어 가꾸자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모종은 내가 우리 밭에 길렀다. 모가 다 자란 어느 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비가 왔다. 비 오면 모종을 뽑아 내자고 미리 작정을 했었다. 비 온 다음 날 새벽, 부녀회장한테서 5시도 못돼 전화가 왔다. 약속은 아침 6시부터 움직이자고 했는데.


- 모종 뽑으러 가야지.

- 아 예, 벌써요.

밖은 아직 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내심 걱정이 됐다. 이 비 맞고 해바라기 모 내다가 노인네들 병이라도 나면 어쩌지.

- 다음에 하죠, 회장님.

- 그럼 내일 할까? 부년회장은 전화를 그렇게 끊었다.

다음날.

6시가 채 되기 전에 나도 트럭을 타고 마을 회관으로 향하는데, 부녀회장은 노인네 할머니듯 서너분을 짚차에 태우고 우리 모종 밭으로 향한다. 아침 안개에 이른 시간, 무슨 전투에라도 임하는 자세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주로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들)이 모두 모여 점심 때까지 해바라기 모종을 도로변에 냈다. 한 2킬로미터의 거리를. 양쪽 가이니까 4킬로를.


난 우리 마을이 이런 보통 사람들이란 게 자랑스러웠다. 이 보통 사람들이, 할머니들이 신이나서 일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새벽 6시, 면장도 나와 바카스를 돌리며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우리 마을은 어떤 공동체보다 아름다운 가원 마을이 될 수 있단 믿음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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