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씨가원

아카시아 꿀

haanbs 2008. 5. 27. 17:36

시간은 새벽 네시,

1톤 트럭을 끌고 이선용씨(양봉하는 아저씨) 양봉장으로 행했다. 달리는 트럭 안으로 마구 밀치고 들어오는 새벽 공기에서는 흙, 풀, 갖가지 꽃향기가 진하게 묻어난다. 아카시아 꽃의 달콤한 냄새가 흐..음 길게 숨을 들이쉬게 한다.

 

여긴 임진강변인지라 안개가 잦은 편이다. 안개와 어둠을 가르는 강렬한 헤드라이트만 보이더니 어느덧 4명의 보조 일꾼들이 모였다. 선용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넷은 각기 임무를 배정받았다. 벌집에서 꿀을 빼내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은 아저씨가 벌통을 열어서 소비(사람이 만들어준 벌집)를 탁탁 흔들면 벌들이 후후둑 떨어지고 그래도 견디고 버텨내는 놈들은 물축인 빗자루로 싹쓸이 한다. 이때 벌이 덜 덤비라고 말린 쑥을 태우며 우유같이 뽀오얀 연기를 확확 뿌려준다. 나도 잠시 이 역할을 맡았다가 죽는 줄 알았다. 연기를 뿜어대니 벌이 벌떼처럼 내게 달려든다. 얼굴에 붙고... 어느 틈에 내 속옷으로 들어가 옆구리에 스물스물 기어다니고, 얇은 체육복 바지를 입었는데 그 위에서 그냥 마구 쏘아대고 양말을 파고 들어 신발 속으로 기어드는 놈... 으앗 따거.. 앗 따거.. 죽을 맛이다. 선용 아저씨 왈, 거봐, 두꺼운 거 입고 오라고 했잖아... 아이고 그래도 죽겄다. 그래서 바톤 터치! 손 바꿔줘요. 죽것어요!

 

벌을 털어낸 소비장이 든 벌통을 한발 리어카(아니, 미니까 프론트 카인가^^)에 번쩍 싣고 장소를 이동. 이곳에서는 소비장을 한 장 한 장 빼내어 벌이 꿀을 모아 놓고 아마 겨울에 먹을라고 봉해놓은 그 밀봉을 뜯어낸다. 뜨거운 물이 설설 끓는 큰 용기에 이 용도로 쓸 칼이 서너자루 담겨있고 한 번 걷어내고 꿀이 묻으면 다시 물에 담가 꿀을 녹이고 다시 자르는데 사용한다. 뚜껑을 걷어낸 소비장에서는 이제 꿀이 질질 흐른다. 꽉찬 것은 묵직해서 받아드는 손목이 휘청한다. 이걸 받아들어서 꿀을 짜내는 커다란 스테인레스 원통에 담는데 그냥 담는 게 아니고 통속에는 소비를 8장씩 끼워 넣을 수 있게 시렁이 만들어져 있다. 여기에 8장을 끼우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 원통에 달린 손잡이를 잡아 돌리면 시렁에 실린 소비장이 정신없이 돌고 8각형 벌집에 들어있던 꿀들이 원심력에 의해 사방으로 날아 튀긴다. 사방이래야 봤자 원통의 벽일 뿐이지만. 벽에 부딪힌 꿀은 아래로 흘러내린다. 무중력이 아니라 위로 옆으로 사방으로 흩어질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바닥에 모인 꿀은 수도꼭지처럼 생긴 관을 통해 바깥으로 나와 미리 대기 시켜놓은 2말짜리 통 속으로 쏘오오욱 길게 떨어진다.

 

오늘 이렇게 2말짜리 통으로 12개 분량의 꿀을 땄다. 새벽 네시부터 아침 밥 먹고난 9시까지 한 숨의 틈도 없이 벌처럼 움직였다. 처음 보는 소변이 노오랗다. 복숭아뼈 부위, 허벅지가 팅팅 부었다. 옷을 벗어보니 가슴에는 아직 벌침이 박혀있다. 5일전에도 이런 행사가 있었는데 그땐 다른 덴 다 놔두고 윗 잎술에 쏘여 3일을 공식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두께가 토인의 넉넉히 3배는 될 것 같았으니까...

 

이젠 그렇게 얻은 꿀이 고객의 식탁에 오를 때다. 선용 아저씨는 2리터 짜리 병에다 아카시아 꿀을 담아 4만 5천원에 판다. 말로 사는 사람한테는 에누리가 있단다.

 

여기 꿀이 좋은 이유

 

- 다른 양봉꾼들처럼 전국을 돌며 급히 꿀을 채취하지 않는다. (아까 얘기한 과정중 밀봉을 떼어내는 작업이 있었는데 유랑 양봉꾼들은 밀봉이 생기기 전에 꿀을 짜낸다). 임진강변에 일년 내내 있다.

- 오늘 딴 아카시아 꿀. 앞서 5일 전에도 꿀을 채취했다. 아카시아 꽃이 피면 꿀이 하도 많아서 3-5일 만에 한 번 꿀을 딴다. 벌한테 설탕을 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 그 외 주섬주섬 뭐 이유가 있겠지만, 난 자연이 준 그대로의 꿀이 최고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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