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스크랩] "아나스타시아"를 읽고

haanbs 2008. 2. 3. 22:38

"아나스타시아"는 러시아 사람이 쓴 책이다.

 

95년 이후 지금까지 9권의 책이 나왔고 러시아에서 1,000만부가 넘게 팔린 책이며 미국과 유럽에서도 번역 출간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10월 3권이 우선 번역출간되었고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2권은 "소리내는 잣나무" 3권은 "사랑의 공간"이 제목이다.

 

저자는 블라지미르 메그레라는 시베리아 사업가 출신으로 시베리아 타이가(침엽수림 지대)에서 우연히-책을 읽으면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되지만- 만난 아나스타시아라는 여인을 통해 이 책을 쓰게 되는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된다.

 

우리집에 이 책이 오게 된 것은 남편이 황대권선배를 만나서 받게 되었다.

 

황대권선배는 남편에게 꼭 이 책을 읽어보고 명지도 꼭 읽도록 권하라고 했다고 한다.

 

황선배는 책 머리에 매우 간절한 추천의 글을 써놓았다.

 

생태공동체 운동가이며 생명평화운동을 열심히 하는 분이라서 그 추천의 말만으로도 읽어야할 이유가 있어보였다.

 

처음에는 명지가 몇 장 읽고 재미있다고 나보고 읽으라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나만 빠져들어 열심히 읽고 식구들은 아직 모두 일독하지 못했다.

 

열심히 일독을 권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단숨에 3권을 모두 읽고 다시 천천히 필기를 하면서 읽고 있다.

 

성경과 관련이 많아 성경도 같이 읽는데 생각을 가다듬으며 읽자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진도가 잘 안나가지만 요사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약간은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밝게 하는데 무척 도움을 준 책이다.

 

이전에 인생의 지혜를 얻고 상한 마음을 위로하며 내 영혼을 달래기위해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보았지만 이 책만큼 따뜻하고 단순하게 마음과 정신을 일깨우고 편안하게 깨달음을 주는 책은 만나지 못했다.

 

아나스타시아는 한마디로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우선은 젊은 여성이고 -2008년 38살- 타이가에서 부모는 일찍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동물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라난 사람이다.

 

태초에 지음을 받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그대로 간직한 진정한 "사람"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원형은 일종의 초능력자 같기도 하고 예수님과 같은 성인과 같기도하고 자연 그 자체와 조화를 이룬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고 밝아서 사랑과 선함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간에 내가 알고 있었던 지혜의 말씀 혹은 깨달음의 경지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비워내고 다시 생각의 틀을 짜게 해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내 생각에 엄청난 에너지가 담긴 것이다.

 

마치 환타지 소설과 같기도 한 이 책은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아직 읽지 않은 9권까지 책을 통한 현실의 변화까지 생생하게 전달하며 거부할 수 없는 설득력을 가졌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과학자라면 자신의 과학적 견해를 다시금 돌아볼 것이고 사업가나 행정가라면 정책과 사업구상에 영향을 받을 것이며 여성이라면 자신의 행복과 결혼, 육아에 대한 교육에 대한 견해를 사려깊게 돌아볼 것이다.

 

성직자나 수행자라면 자신의 내면의 경지를 돌아볼 것이며 삶의 의미를 찾아 목마르게 진리를 구하는 이는 마치 갈증을 풀어주는 샘물을 만난 듯 게걸스레 이 책을 파고들 것이다.

 

 

 

 

 

 

나는 내 영혼에 대해서 내 인생에 대해서 다시 곰곰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이들과 남편의 삶을 다시금 생각하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어떤 정신의 기초해서 살아갈 것인가?

 

아침에 일어나 태양의 빛을 보면서 기쁨에 차서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가족과 이웃과 내가 아는 이들에게 밝은 사랑의 감정으로 정성을 다해 만나고 대화했던가.

 

얼마나 선해지려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가.

 

세상이 품고 있는 모든 존재들과 우주의 존재들에 대한 아무런 소통의 관계도 없이 이제껏 살아왔는데 그것들과 사람인 나는 하나의 우주 생명 법칙에 의해 영향을 주고 받고 있음을 미약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가끔 내 영혼은 어두움 가운데 두려움에 떨고 있다.

 

삶 자체의 불안함이 당연하다고, 세상의 법칙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것을 감당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 목숨과 가족의 목숨을 유지하고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느땐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진듯 모두 내려놓고 도망가거나 생명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었다.

 

이런 영혼의 불안함과 어두움의 근원은 내가 삶의 진정한 기쁨과 존재의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 기쁨을 얻을 수 있을지 정말 몰랐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사실 잘 몰랐다.

 

누군가 남이 써놓은 책을 보고 남이 만든 예술작품을 보고 찾아보려 애썼지만 손에 잡힐듯 하다가도 정확한 의미를 밝히지 못한 채 그것은 달아나버렸다.

 

애쓰고 힘들게 구해야 진리가 얻어진다고 알았다.

 

고행을 하거나 힘겹게 수행을 하고 자신을 엄격하게 다스려야 겨우 닿을듯 말듯 진리의 근처에 갈 수 있다고....감히 그 길을 꿈도 꾸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세상 법칙대로 살다가 가는 것이 우리네 주어진 삶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언제 내가 병에 걸리건 사고를 당하건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어정쩡한 삶을 살다가 간다면 참으로 살아온 시간이 의미가 없이 부서지는 것만 같고 왜 태어나서 이리 살아왔던고 존재의 슬픔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된다.

 

나름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하고 이젠 귀농을 해서 살고 있지만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면 나는 해답을 얻지 못한 문제를 안고 이제까지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채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던 셈이다.

 

가만히 살아온 생각을 해보면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바뀐 것이 많지만 내 깊은 영혼은 달라진 것이 없으니 말이다.

 

이 자라지 않은 아무것도 깨달지 못한 영혼은 죽으면 소멸되거나 다시 괴로운 한 생을 위해 환생할 것인가?

 

영혼을 믿지 않는 물질의 극치을 이룬 시대에 이러한 의문들을 품는 것은 생뚱맞은 일같아 보인다.

 

현대에 와서 종교는 이런 영혼을 위해 해답을 제공하고 있는가?

 

모르겠다.

 

어떤 도그마에 빠져서 무언가를 숭배하고 복을 빌고 의지하고 사는 것이 영혼을 구하는 길인가에 대해서 아나스타시아가 지적한 말은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이 어찌 사는지 그 사람처럼 세상 사람이 모두 따라서 산다면 세상이 어찌 될지 상상해보면 그것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스크랩한 옛날 이야기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다.

 

강한 직감으로 나는 이 책에 흠뻑 빠져있지만 연약한 내 의지와 어두운 영혼이 얼마나 밝아지고 강해질지는 두고 봐야할 것이다.

 

남은 생명의 시간동안 내가 얼마나 더 깨끗하고 밝은 사랑의 힘과 선함을 매일의 삶 속에서 조금이라도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소망한다.

 

좀더 밝은 깨달음으로 내 영혼이 자라나기를, 강해지기를. 그 힘으로 더 나은 삶을 마칠 수 있기를.

 

내게 주어진 이 한 생은 다시 생길 수 없다.

 

한 번의 기회. 다음의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한 걸음도 이 생에서 나아가지 못한다면 다음 생도 반복될 불안함과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할 것 아닌가.

 

 

 

 

 

 

 

내 존재의 불완전함과 어리석음 혹은 이기심과 시기, 질투, 화, 교만, 미움, 육체와 물질에 대한 욕망, 남이 나에게 주는 나쁜 감정에 대해 감당하지 못하고 반응하고 오래 괴로움을 느껴야하는 약함.... 이것이 불안함과 두려움의 근원이다.

 

산 속에서 사람과의 접촉이 어느정도 적은 상태로 몇 년 살다보니 그러한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자신의 불안함과 두려움 자체도 자각하지 못했다.

 

감정이 이는데로 화를 내고 속상해하고 파괴적인 감정에 시달리며 술을 마시거나 싸우거나 자신을 괴롭히면서 시간을 보냈다.

 

혼자 있음으로 밭 가운데 앉아 고요함으로 주변의 산 능선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나는 그런 자신의 시간들을 달랬던 것 같다.

 

쉼없이 바쁜 생활 가운데 계속 살았다면 이러한 의문조차도 깨달치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아나스타시아"는 이런 나의 상태를 일러주고 빛 가운데 나아가기를 내 삶의 의미를 제대로 찾기를 부드럽게 일러주고 위로해준다.

 

지혜로운 생각을 열어준다.

 

진리를 눈으로 보지않아도  어린애같은 순결함으로 믿고 기뻐하기를 권한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직감한 바는 이런 정도이고 구체적인 정보와 유익한 견해들도 많이 들어있다.

 

블라지미르는 매우 유능한 사업가였고 현실적인 사람이였다.

 

아나스타시아의 이야기를 블라지미르가 받아서 현실 가운데 증명하려 애썼고 서서히 그도 변화되어간다.

 

그의 영혼과 삶의 변화, 신념의 변화는 매우 극적이고 우리 가운데 있는 어두움과 닮아있어 그에게 공감을 많이 느낀다.

 

또한 그의 능동성과 용감한 실천력에 놀라움을 느낀다.

 

러시아혁명사를 읽을때 혁명가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열정을 다시 본다.

 

그는 세상의 시스템에 변화를 줄 수 있었다.

 

러시아는 아나스타시아로 인해 변화하고 있다.

 

쿠바가 친환경농업국가로 자급자족을 하는 선도국가가 되었다면 러시아도 머지않아 그러한 국가의 변화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에 기대어 살아온 몇 세기 동안 인류는 이 길이 문제가 있음을 깨달게 되었다.

 

지구의 자연스런 운행법칙은 상했고 사람들은 병들고 약해지고 마음은 어두움 가운데 지쳐있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더 낫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욕망을 줄여야함을 알게 되었고 자연 가운데 나아가 그 조화로움가운데 함께 살고 자신을 돌보아야함을 깨달았다.

 

우리 자식들에게 이러한 삶의 방식을 가르치고 익숙해지도록 함께 성장해야함을 알게 되었다.

 

욕망을 줄이고 가족이 함께 하는 생활 가운데 만족함을 얻는 것은 실제 살아보면 얼마나 좋은지 모두 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밥을 지어 먹고 함께 걷고, 느끼고 알게 된 것을 언제든 열어보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의 눈길과 배려를 함으로써 얼마나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아나스타시아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연과 소통함으로써 우주와 소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능력이였는데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능력이다.

 

이 능력을 우리 아이들은 살려낼 수 있다.

 

남녀가 어떻게 사랑하고 아이를 가지고 키워야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우리가 지금 노력하면 우리 손자대에 가면 인류가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죽어가던 지구가 살아나고 인간이 원래의 소명대로 삶을 가꾸면서 행복해지는 꿈은 구체적인 연결고리들을 거쳐서 현실이 될 수 있다.

 

개개인의 깨달음과 정책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미 이러한 변화는 우리 시대의 주제이다.

 

어두운 논리에서 벗어나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나 오랫동안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을 버려야하기때문에.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 안에 살고 있는 어두움과 이별해야하기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한 줄의 긴 고리로 엮어서 전체의 상을 보여주는데는 "아나스타시아"만한 책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잔잔한 전율을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

 

나보다 밝은 사람들은 이 책으로 인해 더 많은 힘을 얻을 것이다.

 

 

 

 

 

 

 

 

 

 

 

  

 

 

 

 

 

 

출처 : 잣나무 옆집
글쓴이 : 잣나무 원글보기
메모 : 잣나무 옆집님의 아나스타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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