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할아버지

haanbs 2007. 6. 14. 06:37

* * *

 

아나스타시야 할아버지는 강변의 통나무에 앉아있었다. 그 옆에는 강가에 매어둔 작은 나무배가 파도에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강 건너편까지 최단 거리의 나루터라 해도 몇 킬로미터는 되고, 강물의 흐름을 따라 노를 저어 내려가면 어렵진 않을 거야. 하지만 흐름에 역행하여 노를 저어 되돌아 올 때는 어떻게 하지? >> 노인과 인사를 나누며 난 이런 생각이 들어 노인께 물어보았다.

 

- 천천히 오지 뭐. ? 할아버지의 대답이 돌아왔다. ? 보통은 항상 명랑한 분이시건만 이번에는 어딘가 심각해 보였다. 그리고 말 수도 적었다. 대답에도 소극적이었다.

나는 그 분 옆 통나무에 앉았다.

 

- 아나스타시야가 그 많은 정보를 어떻게 자기 안에 담고 있는지 이해가 안 돼요. 과거를 기억하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 아니까요. 그런데 살기는 타이가에서 살며 꽃과 해님 그리고 짐승들에 기뻐하지요. 그리고 뭐에 대해서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 뭘 생각할 게 있는데? ? 할아버지가 답했다. ? 그 애는 느끼는 거야, 정보를 말이야. 그 애는 필요한 만큼 취할 수 있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공중에 우리 곁에 있어. 그걸 그냥 취할 수 있기만 하면 돼. 소리로 내면 되고.

- 어떻게 그렇게?

- 어떻게 어떻게 자네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거리를 걷고 있네. 자기 일을 하면서 말이야. 그때 지나던 사람이 자네한테 다가와 묻는 거야. 거시기에 가는데 어떻게 가느냐고. 그럼 자네 답할 수 있겠나?

- 있죠.

- 거보게. 간단하지. 자넨 자기 일을 생각 중이었어. 자네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질문이었어. 하지만 자네는 대답을 할 수 있었고. 자네 내부에 답이 있었으니까.

- 그거야 길을 묻는 부탁이고요. 지나던 행인이, 만난 시점으로부터 삼천 년 전 그 도시의 모습이 어땠었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못할 거에요.

- 못하겠지, 게으름을 피운다면 말일세. 사람 각자의 내부와 그 주위에 창조의 순간부터 모든 것이 보존되어 있다네. , 배에 타세나. 떠날 때가 되었구먼.

 

노인은 노를 잡고 앉았다. 강변으로부터 약 일 킬로미터 멀어졌을 때, 침묵을 지키던 할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 블라지미르, 그 정보와 생각에 너무 빠져들지 않도록 노력해보게. 사실(事實)을 스스로 판단하게나. ()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 스스로 느껴보게, 동등하게.

-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 자네는 정보에 빠져서 그걸 머리로 판단하려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일세. 하지만 머리로는 안 돼. 손녀 아이가 아는 정보의 양은 머리엔 다 못 들어가. 자넨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이상 인지하지 못하게 돼. 

- 난 다 인지해요. 이건 강이고, 배고

- 그렇게 다 아는 자네가 손녀 아이, 자네 아들과 작별도 제대로 못 했는가?

- 그랬나요. 더 글로벌한 문제를 생각 중이었거든요.

 

실제로 난 아나스타시야와 작별인사도 제대로 안 나누고 떠난 터였다. 오는 길 내내 생각에 잠겨 강에 어떻게 당도했는지조차 몰랐다.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아나스타시야도 다른 것에 대해, 글로벌한 것에 대해 생각해요. 그녀에게 온갖 감상 따위는 필요 없어요.

- 아나스타시야는 존재의 모든 차원을 스스로 느낀다네. 하나를 느낀다고 다른 것에 방해가 되지 않아.

- 그래서요?

- 가방에서 쌍안경을 꺼내 강변에 있는 나무, 우리 배가 묶여있던 곳을 보게.

 

쌍안경 속에서 난 나무를 보았다. 강변, 그 나무 줄기 기둥 곁에 아나스타시야가 아들의 손을 잡고 서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보자기가 들려있었다. 아들과 함께 서서, 강물의 흐름을 타고 멀어져 가는 배의 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 손녀 아이가 아들을 데리고 자네 뒤를 따라 왔을 게야. 자네가 생각을 마치고 아들과 자기에 대해 생각해주기를 바랐겠지. 자네한테 줄 보따리를 준비한 거 보게. 그런데 자네한텐 손녀한테서 얻은 정보가 더 중요했던 거야. 영적인 것, 물질적인 것 ? 모두를 동등하게 느껴야 해. 그래야 삶에 굳건히 두 발로 서게 되는 거야. 하나가 다른 것에 월등히 우세하면 절름발이 형국이 되는 것이지.

 

노인은 덤덤하게 얘기를 풀며 능숙히 노를 저었다.

노인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소리 내서 대답을 하고 싶었다:

 

- 난 이제 알아야겠어요 스스로 깨달아야 해! 우리는 누구지? 우리는 어디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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