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 Dacha - 시골집
볼쇼이 극장의 미끈한 다리의 발레리나, 배경음으로 흐르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죄와벌을 쓴 도스토예프스키, 전쟁과 평화의 작가 레프 톨스토이, 최근엔 테니스 요정 마리야 샤라포바... 러시아, 러시아 사람하면 우리 조선 사람한테 막 연상되는 그림은 뭐 이런 정도일 듯 하오. 키 크고 눈 퍼렇고 머리 노란 서양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소.
소인은 러시아에 10년이 넘는 세월을 살다보니, 러시아 사람들이 코 큰 양키(Yankee-자기들 끼리도 쓰는 말이니 언짢아 마오)와는 뭔가 많이 다른 것을 느끼고 있었오. 유럽 전통의 교육제도며, 음악이며, 미술이며, 과학적 진보하며, 또 나이 지긋한 인텔리겐찌야 할머니가 내게 러시아 문학과 음악을 얘기해 줄 정도요. 멋진 서양의 할머니와 하나도 다를 게 없소.
허나, 살다 보면 그게 아이오. 음식을 사양하는 겸양지덕이 있고, 각자 따로 돈 내는 Dutch pay가 왠지 불편하고, 친구의 부탁을 잘 거절 못하고, 남의 불행을 자기 일처럼 아파하는 심성이 있더란 말이오. 미국인들은 음식을 대접하면 거기 뭐가 들었느니 짜느니 매우느니 앙탈적 성향이 있지만 러시아 사람한테선 그런 유치함을 느낄 수가 없소.
왜 그럴까 오래 궁리를 해왔는데... 중요한 한가닥 실마리를 소인은 찾고야 말았소.
러시아 사람들은 다차Dacha란 걸 좋아하오. 그게 별 건 아니구 시골에 한 200평 대지에 지은 작은 집과 거기 딸린 조그만 채마밭과 과일 나무 꽃나무 정도요. 겨울에는 눈이 많고 춥고 하니까 그냥 비워두었다가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도시사람들은 짐 챙기기에 바쁘오. 다차에 갈 준비를 하는 것인데, 웬만한 가구며, 주방용품이며 다 다차로 옮기는 것이오. 학교다니는 아동들은 두세달은 될직한 긴긴 여름방학을 다차에 가서 보내오.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모스크바 전철에는 사과 바구니 든 사람, 꽃을 여러 안음 안은 사람, 딸기가 든 소쿠리, 이름 모를 열매 등등을 나르는 사람이 성시를 이루오. 수확기가 시작된 것인데 다차서 난 감자는 월동 식품이고 오이는 오이지로 절여서 보드카 술의 좋은 안주가 되오.
그런데 보니까 이 다차에 다니는 사람들(다츠니키Dachnik라 하오)이 러시아 전체 인구의 70%에 이른다는 통계이오. 다시 말하믄 러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꾼들이란 말이오. 아하, 그래서 난 이 대목에서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소. 과연 그랬구나! 시골 사람들이라 양키와 달랐구나. 아파트 바깥 현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하는 러시아 할망구들이 그래서 우리 할망구와 다르지 않았구나. 어딘지 모르게 촌티가 나는데 바로 촌놈들이라 그랬구나!
Dacha가 최근에는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 하오. 거기서 나는 농산물을 가격으로 치면 차비도 안 나올 정도라지만 흙과 사람의 알 수 없는 관계, 거기서 얻는 사람의 정서적 안정, 재충전의 효과, 자기가 직접 기른 농산물을 먹을 때의 치유효과등은 아직까지 그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은 큰 효과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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