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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획

haanbs 2007. 2. 22. 12:35

포획

 

- 헬기가 본부로 돌아왔어요. 우리 모두는 잠자코 헬기가 하강하는 걸 바라보았죠. 헬기에서 내린 비행사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어요. 비행사들도 아나스타시야를 쳐다보았죠. 신체가 건장하고 무장을 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낡은 마고자 차림에 홀로 서있는 여자를 묵묵히 쳐다보고 선 것이죠. 사태는 뻔한 것이었죠: 여인은 남자들의 포획감이었어요. 문제는 어떻게 하면 좀 젊잖게 포획을 마무리 지을 수 있나 하는 것이었죠. 보리스 모에세예비치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말문을 뗐어요. 직설적으로 전부 다 털어놨어요.

 

- 아나스타시야, 당신은 과학에 쓸모가 있어요. 당신을 이주시키라는 결정이 났습니다. 그건 당신을 위해서도 필요해요. 당신이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순순히 따를 의사가 없다면 우리가 강제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새 거처에 당신의 아들도 데려가고 싶겠지요. 지도상에서 당신의 빈터를 가리켜주세요. 헬기가 가서 아들을 데려올 겁니다. 나중에 짐승도 몇 마리 포획해서 당신의 새 거주지로 옮길 수도 있겠죠.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이 모두는 당신과 아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조처입니다. 당신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 하지 않습니까?!

- 그래요. 아나스타시야는 차분히 대답하고 말을 이었죠 내가 아는 전부를, 원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원하는 사람 모두와 말이죠. 하지만 과학을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과학의 업적을 처음엔 한정된 소수가 점유하죠. 자기들 만의 사사로운 이해를 위해 사용하고요. 일반 대중에게 과학의 성과가 공표되는 것도 이들 소수에 이로운 경우에 한정되지요. 당신이 대리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특정 단체 아닙니까? 난 당신들과 갈 수 없어요. 나는 사람을, 내 아들을 키워야 합니다. 사랑의 공간이 지어진 곳에서만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이 공간은 먼 나의 조상님들 그리고 가까운 부모들이 세우고 다듬어온 것이에요. 아직 크지는 않지만 난 바로 그것을 통해 우주의 모든 존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변에 사랑의 공간을 지어서 자기 자식에게 선사해야 합니다. 자식에게 줄 사랑의 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은 죄악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변에 작은 사랑의 공간을 지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점을 깨닫고 행한다면 온 지구가 사랑이 환히 빛나는 우주의 한 점이 될 것입니다. 가 원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바로 사람의 소명이 있어요. 유일하게 사람만이 그걸 지을 수 있으니까요.

건장한 체구의 경호원 두 명이 아나스타시야를 돌아 뒤에 섰어요. 누구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는지는 몰라요. 경호대장? 아니면 사전에 다 계획된 일인지? 둘은 시선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아나스타시야의 두 팔을 움켜잡았어요. 능숙하게 했지만 뭔가가 두려운 듯도 했죠. 새를 잡아 날개 쭉지를 펴듯 아나스타시야의 두 팔을 꽉 잡았어요. 체구가 땅땅하고 머리를 짧게 깎은 경호대장이 앞으로 걸어 나와 보리스 모이세예비치 옆에 섰어요. 아나스타시야의 얼굴에는 겁먹은 기색이 안 보였어요. 그녀는 머리를 살짝 숙였고 속눈썹은 아래로 처져 시선을 가리고 있었죠. 아나스타시야는 눈을 들지 않고 말문을 열었어요.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하고 선한 마음이 배어 있었죠.

 

- 폭력을 행사하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 누구한테? 경호대장이 쉰 목소리로 물었어요.

- 여러분한테요. 내게도 유쾌하지 않을 거구요.

보리스 모이세예비치는 두려움인지 긴장인지를 억누르며 물었어요:

- 당신은 사람한테 없는 능력을 활용하여 우리한테 육체적 고통을 가할 수 있나요?

- 난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이죠. 하지만 난 지금 긴장돼요. 긴장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 예를 들면 어떤 거죠?

- 물질 세포 원자 원자핵 혼돈적으로 움직이는 핵의 입자들 여러분도 다 알죠. 그것들을 정확히 분명하게 상상하고, 보고, 파악하고, 핵에서 혼돈적으로 움직이는 입자를 생각으로 하나 떼어내기만 하면 그 물질에서 일어나는, 일어나는

 

 

아나스타시야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속눈썹을 살짝 들어서는 땅에 놓여있는 돌을 주시하기 시작했어요. 돌은 입자로 부숴지기 시작하더니 금새 한 줌의 모래가 되고 말았죠. 그리고 나서 그녀는 시선을 들어 경호대장을 쳐다봤어요. 눈을 가늘게 뜬 집중된 시선이었죠. 경호대장의 왼쪽 귀 끝에서 김이 나기 시작했어요. 귀의 물렁뼈가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없어져버렸어요. 그 때 갑자기 옆에 서있던 경호원이 새하얀 얼굴을 하고 권총을 뽑았어요. 생각도 않고 능숙하게 했죠. 그는 권총을 아나스타시야 쪽에 대고 탄창의 내용물을 모두 비워버렸죠.

이 순간 우리 모두의 생각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나 봐요. 전투 중 극한 상황에서 군인들은 날아가는 포탄이나 탄알을 보았다는 경우들이 있죠. 그런 현상이 나타났어요. 보통 탄환의 속도로 날지만 생각과 인지가 가속되어 천천히 나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요.

난 하얗게 질린 얼굴의 경호원이 쏜 총알이 아나스타시야를 향해 줄을 이어 나는 것을 보았어요. 아나스타시야의 머리를 향해 날던 첫 발은 그녀의 관자놀이를 스쳤어요. 다음 발 총알들은 다 날지 못하고 공중에서 먼지로 뿌려졌어요. 아나스타시야가 주시하던 보던 돌맹이처럼 우리 모두는 제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있었죠. 우리는 아나스타시야의 두건 속에서 뺨을 타고 천천히 흐르는 핏줄기를 봤어요.

아나스타시야의 팔을 잡고 있던 경호원들은 발사 시 놀라 그녀로부터 약간 떨어져나갔지만 팔을 놓지는 않았어요. 죽은 듯이 손아귀를 쥐고 있어서 아나스타시야는 경호원에 끌려 양쪽으로 흔들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우리 주변의 땅 위에 푸른색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위쪽 어디에서 내려왔는데 점점 세차졌어요. 우리는 마법에 걸린 듯 움직이지도 말도 못했어요. 이런 신비한 정적 속에서 아나스타시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 부디, 제 팔을 놓으세요. 제발 놓아요, 늦어요!

 

 그렇지만 꼼짝 못하게 얼어붙은 경호원들은 손아귀를 풀지 못하고 계속 그녀를 잡고 있었죠. 그녀가 당신과 얘기하다가 왜 특이하게 위로 손을 들었는지 난 이제 알아요. 그렇게 해서 위에 있는 누구에게 자기한테 아무일 없으며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알린 거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나스타시야 손을 잡고 있어서 못 든 거지요

푸른 빛은 계속 세졌고, 이어서 뭔가가 번쩍이는 듯 싶더니 우리는 보았죠 우리 위에 떠있는, 파란 빛으로 움틀대는 불 공을 봤어요. 그건 커다란 공 번개와 같았어요. 그 속에는 수많은 번개-방전이 번쩍이며 서로 엉켰어요. 번개-방전은 가끔씩 푸른 껍질을 벗어 나와서는 저 멀리 서있는 나무들의 꼭대기나 우리 발 밑의 꽃에 닿았지만 그것들에 전혀 해를 미치지 않았어요. 가느다란 번개 빛이 개울을 막고 있는 돌과 쓰러진 나무 더미를 건드리는 순간 더미는 구름으로 변해 날라 없어졌어요.

불 공의 푸른 껍데기를 벗어나는 빛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의 에너지를 가진 듯 했고, 무언가 이성에 의해 제어되었어요.

상상도 불가능한 엄청난 힘을 보유한 이성적 존재가 우리 옆에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 순간 그보다 더 놀랍고 신비했던 것은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느낀 기분이에요. 우리는 공포도, 아니 심지어는 긴장감도 느끼지 못했어요.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옆에 마침 무언가 가깝고 친근한 뭔가가 나타난 것처럼 평화로움과 좋은 느낌을 가졌어요. 그게 상상이나 되는 일인가요.

움틀거리는 푸른색 공은 우리 위에서 선회하며 상황을 파악이라도 하는 듯 했어요. 갑자기 공중에서 원을 그리고 아나스타시야 발 밑으로 내려왔어요. 푸른 빛이 더 강해졌고, 편안하고 나른한 기분처럼 우리의 긴장을 녹여서 우린 움직이지도 듣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공의 푸른색 껍데기에서 몇 개의 불 번개가 나와서는 아나스타시야 쪽으로 돌진하더니 그녀의 맨발 발가락을 쓰다듬듯 만져주었어요.

아나스타시야는 긴장이 풀린 경호원들로부터 자기 손을 풀어서 공 쪽으로 뻗었어요. 공은 즉시 아나스타시야의 얼굴 높이로 이동했고, 우리 눈 앞에서 돌 더미를 먼지로 날려버린 불 번개는 아나스타시야의 손을 만졌는데 전혀 해를 미치지 않았어요.

아나스타시야는 공하고 얘기를 나눴어요. 그녀의 말을 우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그녀의 몸짓과 표정으로 판단컨대 그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증거하고 설득하려는데 잘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공은 한 마디 답도 없었지만 그녀의 말에 수긍하지 않고 있음은 알 수 있었죠. 아나스타시야가 점점 더 열을 내며 설득하는 것을 보고 말이죠. 아나스타시야는 얼굴이 붉어졌고 끊이지 않고 계속 말을 하며 두건을 벗었어요. 황금-보리 빛 머리 다발이 어깨를 타고 흘렀고, 얼굴에 말라붙은 핏줄기를 덮었어요.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훌륭하고 완벽한지 볼 수 있었죠. 공은 불 혜성이 되어 아나스타시야 주위를 몇 번 날아 돌고, 다시 그녀의 얼굴 곁에서 숨을 죽였죠. 수천 개의 가는 번개가 황금빛 머리카락 쪽으로 휙 날았고,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조심스레 만지고 약간 들어서 쓰다듬어 주는 듯 했어요. 한 줄기의 빛은 머리카락을 한 다발 들어올려서 아나스타시야의 관자놀이에 총알로 생긴 상처를 열어 보였고 다른 빛 줄기는 피가 말라붙은 흔적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어요. 말이 아닌 불 빛의 행위로 공은 일어난 일을 상기시키려는 듯 했고, 그녀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어요. 공은 자기 내부의 빛을 모두 없앴고, 아나스타시야는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했어요. 공은 아나스타시야 주위를 다시 한번 날고 공중으로 날아올랐어요. 푸른 빛은 점점 약해지고 우리한테는 이전의 상태가 돌아왔어요. 그런데 땅에서는 푸른 빛 대신 갈색 연기가 솟아 올랐어요. 이 연기가 우리 주변의 공간을 채웠고 아나스타시야 홀로 자그마한 푸른색 섬에 남게 되었어요.

갈색 연기가 우리를 완전히 감쌌을 때, 우리는 지옥이 뭔지 알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