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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심는 할아버지

haanbs 2010. 5. 6. 09:18

 

 

우리 동네에 나무 심는 할아버지가 계시는데요. 연세는 92세. 건강으로 말하자면 오토바이를 타실 때 자세가
젊은이들 보다 훨씬 꼿꼿한게 여간 멋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젊어서 잣나무, 낙엽송을 동네 산에
많이 심은 분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건강하신가 하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지요.

 

 

노인이 심고 가꾼 낙엽송 숲 

 

근데 제가 오늘 들에서 일하다 마실 물을 뜨러 그 할배 앞 마당에 있는 샘물로 갖지요. 이 할배가 어디선가 다가와 말을 건네십니다.

 

- 혼자 그 일 다 하느라 수고가 많다. 고맙다. 자 이리 와바.


그리고는 당신의 집안 뜰로 안내하십니다. 뜰에는 60여년 된 회양목이 있는데요. 이 할배가 직접 심어서 키운 거에요. 회양목 중에서는 제가 본 것 중 최고령으로 우람하고 멋있습니다. 60여년 세월을 살았으니... 둥그렇게 다듬어서 키는 약 2미터 지름은 2-3미터 쯤 될까 합니다.


- 내 니가 하는 일을 도울 수는 없고, 이거나 캐다 심어라.

하고 다른 회양목을 가리키십니다. 한 20여년쯤 자란 나무로 보입니다.


- 이놈하고 저것, 그러고 저깃 것. 세 그루.
- 아니 이리 오래 키워 귀한 걸 어떻게 제게?! 고맙습니다.
- 난 니가 고맙다. 자네가 그 언덕에 지은 것(가원으로 가꾸고 있는 곳을 지칭) 가끔 보러가. 자네가 없을 때도. 자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참 호강한다. 아들이 앞에 꽃 밭을 만드니... 내가 도와줄 게 없으니 이 나무라도 캐다 아버지 산소 앞에 심어드려.  아버지가 얼마나 좋겠나. 아들이 맨날 옆에 있어주지...

- 아저씨 그걸 다른 사람도 알까요?  내가 말을 받는다.
- 모를 거야, 아마...

 

 

 

멀리서 본 낙엽송 숲

 

이 노인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내 트럭에 시동을 건다. 들로 나오는 길에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나무를 심으면 저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저 노인이 어떻게 그걸 아시지? 사실 난 아버지와 아침에 인사를 나눈다. " 아부지, 이게 제작년에 심은 앵두나무인데 올 해 꽃을 무진장 피웠네요. 기특하지요? "하는 식으로.

이 노인이 내게 고마운 게 무엇일까? 당신도 돌아가셨을 때 뭍인 곳 앞에 화원(이 노인의 표현대로)을 가꿔주는 자손이 있으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울까. 아마 이런 말씀이겠지?

 

이 노인이 돌아가시면 나도 서운한 눈물을 흘리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몇 십년 간 나무를 심고 키우는 분이 계셨다는 걸 생각하면서. 이 분에게도 아들이 두엇 계시다. 그 중 어느 한 분이라도 돌아와 아버지 뜻을 헤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아 그런데, 이 할배는 아들이 돌아와 살 집터를 잡아 놓고 낮은 곳은 바위로 쌓고 그 사이에 영산홍, 회양목, 소나무 등을 심어 조경공사를 해놓았다. 나무가 큰 것으로 보아 족히 10년은 넘어 보인다.)

 

 

 자손을 기다리는 집터(바위 사이에 소나무, 연산홍을 심어 놓았다)